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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않는늑대/동양늑대

감기가 오는 길

길을 걷고있다.
오늘은 일기예보를 좀 믿어봤는데 아니나 다를까, 영 맞는 것 같지 않다. 그지똥개들, 어제와 비슷한 포근한 날씨라며. 일기예보를 믿었던 나는 니트만 두 겹 걸쳐입고 나와서 바람 앞에 속수무책이다.

찬바람 때문인가 콧날이 쨍하다.
성긴 털실 사이로 서늘한 바람이 술술 들어온다. 나는 버스를 타러 열심히 걸어가면서 옷을 여미고 팔짱도 껴봤지만 별로 도움이 되는 것 같지 않다. 조금 빨리 걸어볼까. 몸에 열이나면 괜찮을지 몰라. 걷는 보폭을 넓히고 속도를 올린다. 스판이 섞여있어 몸과 같이 움직이는 바지는 편한듯 불편한듯 애매한 느낌이다.

깊은 목구멍 인쪽이 간질거린 것 같다. 큼큼. 헛기침을 하면 간지러운 느낌이 살짝 사라졌다가 다시 생겨난다. 열심히 걸었더니 정강이가 땡긴다. 희안하지, 왜 정강이가 땡길까. 종아리도 허벅지도 아니고. 신발이 조금 헐거운가 생각을 하면서 속도를 늦춰본다.

속도를 늦추고 팔짱을 풀었더니 옷 속에서 더운 바람이 훅 나왔다. 열이 좀 나긴 했구나. 어깨가 아파서 가방을 추슬러 매는데 찬바람이 불어와 목덜미가 다시 서늘해진다. 뒷목이 뻐근한건 아마 어제 고개를 외로 꼬고 잠들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요즘들어 꿈에서 깨면 자세가 자꾸 삐뚤게 되어있다. 꿈이 문제인가, 아님 자세가 삐뚤어져서 그게 편해진건가. 생각해며 찬바람에 식은 뒷목을 주므르며 걸었다.

콧날이 다시 쌔해지면서 콧 속이 묵직해진다. 숨쉬기가 가빴던건 콧속이 막혀왔기 때문이었다. 입으로 숨쉬면 숨찬데. 좀 더 속도를 늦추고 걷는데 콧 속 깊은곳에서 머리쪽으로 둔한 통증이 느껴진다. 연이어 오른쪽 눈이 욱신거리고 정수리에서 오른쪽으로 빗겨간 부분으로 통증이 이동하는걸 알 수 있었다.

나는 제자리에 서서 오른쪽 눈의 눈물샘을 꾸욱 누른다. 간지러운듯 시원한듯힌 느낌이 잠시 들고 눈 뒷편을 지나가는듯한 통증이 사라진다. 아, 마스크를 가져왔어야 했어. 뒷목이 뻐근하면서 머릿속에 작은 크기의 심장이 들어있는 듯 퉁-퉁-퉁- 거리는 느낌이 든다.

나는 잠시 자리에 서서 눈을 감고 정수리를 손바닥으로 가만히 누른다. 목 안 깊은곳과 콧속에서 간지러운 느낌이 나고, 바람이 두 겹의 니트를 파고 들어와 피부 위를 훑고 지나가는듯한 한기가 온몸에서 느껴질 때, 나는 눈을 번쩍뜨고 고개를 두리번 거렸다.

그리고 가장 가까이 보이는 약국으로 들어가 말했다.

"종합감기약 하나 주세요. 잠 안오는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