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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오리너구리/밖을

[몽골] 3일. 낮. 바얀작 - 길 위에서

 

On The Road

 

지난 밤에 못봤던 게르 주인가족들과 인사를 나눴습니다. 여주인이 연극배우 누구를 닯았는데 대체 누구를 닮은건지 알 수 없었기에, 그냥 그런가보다, 혼자 생각하고 말았지요. 얼굴에 주근깨가 빼곡한 딸아이는 수줍어 하면서 우리 곁을 맴돌았구요, 조금 더 어린 남자아이는 초코파이를 하나 들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엄마품으로 돌아갔습니다. 
처음 머무른 게르, 처음 만난 가족들. 아마도 손님을 위해 일부러 꺼내입은 듯한 몽골 전통의상은 빛 바랬지만 고왔고, 할머니의 손은 굳은살이 배겨 있었지만 크고 따뜻했습니다. 

 

이른 아침에 달리는 평원은 뭔가 기분이 달랐습니다. 
긴 바지를 입고 길을 나서서 그런가, 아니면 어제와 다르게 눈이 아플만큼 볕이 좋아서 그런가 지난밤의 추위는 그냥 꿈 같았습니다. 

창 밖으로는 평원이 스쳐 지나갑니다. 차를 잡고 몸을 지탱해야 할 만큼 차가 흔들리지만 어제 하루 고생했다고 조금 적응이 된 것 같네요. 몸을 옆으로 틀어 앉아 창을 마주했습니다. 눈 앞에 고정된 창틀이 보이고 그 안으로는 마치 필름이 감기는 것 처럼 계속 화면이 바뀝니다. 언뜻 보면 5분 전의 화면이나 지금 화면이나 똑같아 보이긴 하지만, 조금만 신경쓰고 보면 한순간도 똑같지 않은, 보고 또 봐도 새롭기만한, 그런 평원이 보입니다. 









    
얘들아- 어디가니- 


네비게이션도 없는 그 넓은 대지 위를 어떻게 그렇게 주저없이 달릴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게 바로 연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긴 운전중 간간히 길 위에서 쉬었습니다. 아직은 조금 더 친해질 필요가 있는 옆 차에 놀러가서 난데없는 도촬도 하구요,


          윤하는 도촬당하고                                        선배님은 ... 대화중?



앗.. 스승ㄴ...                                          ...몽골전설 끝났어요 
                                                                      ...과거는 과거일 뿐 ㅋ






비로소, 내가 여행중이라는 생각이 가슴 가득히 찼습니다.

 

 

 

늑대 이빨과 김치

 

몇 시간을 달리고 작은 마을로 들어갔습니다. 사람도 별로 없고 건물도 몇 채 없는, 없는 와중에 한 개는 공사중인 이 작은 마을도 자세히 보면 있을건 다 있었습니다. 병원도 있구요, 학교도 있습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부근 게르의 아이들은 여기에 있는 학교로 공부하러 온다고 했습니다.
  






화장실이 목적인가 했더니 여기서 점심을 먹는다고 합니다. 그냥 그런가보다 했는데 운전 기사분들 분위기가 어수선 합니다. 점심과 차 수리가 주 목적인 것 같았습니다. 오는 길에 차에 조금 문제가 생겨 길 위에 잠시 서있었는데, 그 때 미처 다 수리하지 못했는가 봅니다. 아까와 같이 우리 기사 아저씨가 이리저리 다니며 차를 들여다 봤습니다. 

우리 쑥색 푸르동군은 탈도 잘나고, 파워핸들도 아닙니다. 그래서 힘 좋게 생기신 우리 기사 아저씨가 팔 두드려가면서 운전해야 합니다. 그런 푸르동군이 완전 뻗어버렸나 봅니다. 운전기사 아저씨들이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동안 우리는 나중에서야 매점 혹은 식당으로 짐작할 수 있었던 한 건물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태양열을 피해 잠시 동안은 시원한 것 같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태양의 열기와 사람들의 온기와 음식의 수증기로 바깥보다 더 더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뭐...사실 더 더워졌다기 보단 땀이 나더라구요. 습도가 높아지면 왠지 더 더운 것 같으니까요.

땀을 흘리다가 결국은 밖에 나와 그늘에 있기로 합니다. 반사되는 열기를 안고 우리는 사소한 이야기들을 시작했습니다.

수학 선생님의 박신양 찬양론(?)도 듣고 


내가 바로 박신양이다.  


조금 전 차에서 내리면서 본 민수 모자의 깃털이 낯이 익고 정감이 가는게 뭘까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게 바로!! 매의 깃털!!!! 어디서 났을까? 평원에서 주웠나? 매를 잡았나?? 혼자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어떻게 하면 나도 얻을 수 있을까 머리 쓰면서 침 흘리고 있는데, 내가 고민하는 사이 쿨한 임소는 민수한테 달라고 해서 얻어갔습니다.


아... 맹금류 중에서도 제일 좋아하는 매의 깃털인데, 한 발 늦었네요.
부러우면 지는거지만 ㅜ_ㅜ 부럽습니다. 혼자 안타까워 하고 있는걸 본 누군가 제게 민수에게 늑대 이빨이 있다는 이야기를 해줬습니다. 진짜 늑대? 육식 대형 포유류 중 호랑이와 늑대는 저의 애정 리스트 1위를 다투는 동물들 입니다. 민수에게 구경시켜 달라고 냉큼 달려가 만난 늑대이빨과 칼!!


 


아아아아아-  멋지다 +ㅅ+


늑대이빨 주인의 동조같은건 얻지 않고, 마치 제 칼인양 보듬어 안고 있었습니다. 물론 진짜 뺏을 마음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가지고 있어보고 싶었어 ;ㅁ; 아직 몽골에는 늑대가 산다고 하네요. 침흘리고 있는 저를 보던 민수가 자기 둘째 형이 잡은 늑대라고 말했습니다. 응? 형이? 아무나 늑대를 잡을 수는 없고, 유목민들 중에서도 몽골 정부의 허가를 받은 사냥꾼들만 총으로 늑대를 쏴서 죽일 수 있다고 설명해줬습니다. 양, 염소등 동물들을 물어 죽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늑대도 먹고 살아야지. 그럼 늑대는 뭐 먹고 살라고. 속으로만 열심히 늑대편을 들던 저는 홀랑이 칼을 달라는 말에 아쉬워 하며 칼을 내주었습니다. 그런데 홀랑이 그 칼로 김치를 자르네요. 김치국물은 예로부터 흰 옷을 걸레로 전락시키는 무서운 능력을 지닌 아이템인데!!! 분명 제 칼은 아니었지만 늑대 이빨에 고춧가루가 묻으면 얼룩질까 노심초사 매의 눈으로 지켜보고, 홀랑의 손에서 늑대이빨을 구출한 후 휴지로 곱게 닦아냈다는 후문입니다.

 

몽골에서도 진짜 늑대 이빨은 구하기 힘들고, 관광상품으로 파는건 대형견의 이빨이라는 설명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민수는 저의 심상치 않은 눈빛을 느끼고 칼을 거둬갔습니다. (쳇)


한 낮의 더위, 더위와 수증기가 어우러진 실내. 실내에서 옹기종기 모인 사람들의 열기까지. 그야말로 식당속은 한증막과 다름 없었지만, 우리는 땡볕 아래보다는 여기가 낫다고 결론짓고 안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습니다. 메뉴는 제가 기다리던 양고기 수프와 수르헉. 수르헉은 나딘 축제때 먹는 만두같은 음식인데 납작하고 기름기가 자르르 했습니다. 더운데 수프에 뜨거운 만두라니. 하지만 우리는 모두 맛있게 먹었답니다.

 

 

더워서 입맛 없다구요? 음식이 맛있으면 괜찮습니다. 혹은 배가 덜고파서 그럴수도 있습니다.


 

점심을 다 먹고 나와서도 아직 차는 수리가 덜 되었습니다. 우리는 급할 것 없이 그늘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낙타 요구르트와 맥주, 음료수를 먹으며 웃고 이야기 했습니다. 낙타 요구르트는 생각보다 맛있습니다. 그리고 생각보다 조금 비쌌죠. 먹을까 말까 고민하고 있는 찰나 영어 선생님 or 선배님 or 로사 아버님 중 어느 한분이 우리에게 낙타 요구르트를 사주셨습니다. 모두에게 다 사주겠다는 것을 두명이서 한 개씩 나눠 먹기로 하고 웃고 떠들면서 먹었습니다. 

 

 

로사가 건넨 음료수를 뚜껑 확인도 않고, 입부터 대고 마시려 했다가 낚였던 오후.

볕이 뜨거워서 지치긴 했지만, 그래도 나름 여유있었던 점심시간은 해가 조금 기울어지고, 햇살이 조금 노랗게 물들때 차 수리가 완료되면서 끝났습니다. 

 

우리는 다시 길 위로 나섰습니다.  

 

 

 

양 해체와 열사병


더위에 지쳐 잠든통에 차가 흔들리는지도 모르... 아니 몇번 목 부러질까봐 깨긴 했지만, 여튼 지쳐 잠들어 있다가 정신 차려보니 바얀작에 도착했습니다. 한 낮의 열기에 정신이 몽롱했던 우리는 주인집 게르에 염치없이 들어가 차와 과자를 열심히 먹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을 자기 집에 초대해서 먹을 것 과 마실 차를 대접하는 유목민의 문화. 차려진 과자를 많이 먹고가면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더 열심히 먹었습니다.

 


과자를 먹는동안 주인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선배님과 영어 선생님이, 과자먹고 정신차린(?) 우리에게 몇가지 이야기를 전해주었습니다. 

게르의 기둥 사이로는 지나가면 안되고, 게르의 들보(?)는 세는게 아니라는 이야기. 들보를 세면 명이 짧아진다는 믿지못할 이야기와 결혼식을 하면 주변 마을과 주변 게르에 사는 사람들이 와서 축하해준다는 이야기들. 그런데 그 게르가 우리나라처럼 길 건너에 있는것도 아니고;; 몇 시간을 운전해야 한 두 채 있다는건 함정. 이동하는 길에 잔치를 하고 있으면 반드시 들러서 축하를 해줘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는 우리를 위해 주인 할아버지가 양을 잡는다고 합니다.

 

할아버지는 저기 멀리서 뛰어다느던 양 중에 한마리를 잡아서 집 옆 기둥에 묶어뒀습니다. 양은 처음엔 다른사람들이 다가서자 도망치다가 할아버지가 기둥에 묶어두자 얌전합니다. 왠지 자신이 죽을 것을 아는 것 같이 느껴졌습니다. 제가 바라본 할아버지의 눈은 회색 빛 탁기가 서려있는 눈동자였지만, 전혀 할아버지의 눈 같지 않았습니다. 메마름과 서늘함 사이의, 뭔가 힘이 있는 시선. 아마 양은 할아버지의 시선에 기가 눌린 것 같았습니다. 

양의 앞/뒷발을 잡고 뒤집어 눕힐때도 양은 버둥거리지 않았습니다. 

 

 

할아버지는 바닥에 뭔가를 깔고 그 위에 양을 바로 눕혔습니다. 그리고 가슴팍에 손 한 뼘 만한 상처를 내고 그 손으로 손을 집어넣어 뭔가를 잡아쥐는 것 같았습니다. 아주 짧은 순간에, 양은 죽었습니다. 고통도 없고, 울음도 없이. 

그리고 할아버지는 능숙하게 양의 가죽을 벗기고 살과 내장을 분리 했습니다. 정말 놀라웠던 것은 배를 가르고 살과 내장을 정리(?)해 낼 때도 피가 거의 나지 않는 것 이었습니다. 마지막에 간과 심장을 옮길때만 복강에 피가 고였습니다. 옆에 있던 아주머니가 말하길, 바닥에 동물의 피가 흐르지 않게 한다고. 그게 그 가족이 나름대로 지키는 양에 대한 예의라고 했습니다.

 

 

 

복강에 찬 피 마저도 바가지로 양동이에 옮겨담고 나서야 양의 해체 작업은 끝났습니다.

'장자'에서 늙은 백정의 이야기를 읽은적이 있습니다. '살과 뼈 사이에 길이 있고 그 자리가 보이니 그 곳에 그냥 칼이 지나갈 뿐이다. 그래서 고기가 상할일이 없다'라는 이야기 였습니다. 그런데 그 장면을 실제로 보게될 줄은 몰랐어요.

 

한참을 서서 구경하던 저는 머리가 너무 아파서 게르로 들어왔습니다. 낯익은 통증. 호주에 여행 갔을 때 앨리스 스프링스에서 한 번 겪은 적 있는 더위와 두통을 닮은걸 보니 열사병이 오려는 것 같았습니다. 

여기서 상식,
일사병 - 뜨거운 햇살에 뇌가 국부적으로 익는 것
열사병 - 뜨거운 체온으로 뇌가 찜쪄지 듯 익는 것 

이해하기 쉽게 표현하자면 그렇다는거고, 그래서 열사병이라 판단된 저는 체온을 낮추기 위해 그늘로 도망간 곳이 게르였는데... 아 여기도 덥네요;; 그래서 물을 한사발 마시고 기절에 가까운 수면에 빠졌습니다.

실제로 호주 내륙지방에 가면 (앨리스 스프링즈) 표지판이 여기저기 붙어 있습니다.

<...시간동안 1L의 물을 마시지 않으면 열사병으로 죽습니다>

몇 시간인지는 기억이 잘 안나는데 한시간 이었나 30분 이었나 그랬던 것 같습니다.

 

여튼 생수를 폭풍 드링킹 하고 한잠 자고 일어나니 머리가 괜찮아 졌습니다. 역시 더운데서는 억지로라도 물을 많이 마셔야 합니다. 정신을 차리고 밖으로 나와보니 사람들은 그늘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해가 조금씩 기울어져 뉘엇뉘엇 해지자 사람들은 바얀작을 구경하기 위해 무리지어 움직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