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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오리너구리/밖을

[몽골] 3일. 밤. 바얀작

 

 

 

 

붉은언덕


해가 뉘엿뉘엿 진다. 붉은 언덕으로 올라가자

마른 나무가 뒤틀린 몸으로 하늘을 받들고 서 있고
마른 모래가 온 몸으로 사람의 걸음을 잡는 곳
발 아래 펼쳐진 그림같은 평원에는
길어진 그림자만이 생명의 존재를 알린다.

주인을 알 수 없는 하얀 뼈가
모래 위에 남겨진 누군가의 발자국이
가슴 한 켠, 까닭없는 그리움을 불러 일으키는


어느 시절, 나의 눈시울 같았던 그 붉은 언덕에
함께 가서 발자욱을 남기고 오자

 

 

 

3일째, 바얀작. (바얀작 - 바얀 : Rich + 작 : 나무이름 = '작'이라는 나무가 많은 동네)

 

 

 

 

 

두 줄기 물길이 눈물만은 아니다



양떼를 따라 이리저리 돌아다니다보니 그림자가 길어져가고, 우리는 비로소 미리 계획되었던 사막의 샤워를 누리기 위해 짐을 챙겼습니다.
어르덴달라이처럼 춥지 않지만, 밤이 되면 물이 차가울 수 있으므로 해가 완전히 떨어지기 전에 어서 씻자고 짐을 싸들고 나왔는데, 이런. 샤워장은 2명씩 쓸 수 있네요. 

가는 중에 주인 아저씨가 우리를 위해 잡은 양고기 저녁이 준비되었다고 해서 먹고갈까 그냥갈까, 약간의 지체가 있었지만, 빨리 씻고 나오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져 우리는 다같이 씻으러 갔습니다. 원래 이야기 되었던 곳 말고 다른 샤워시설이 있다고, 그 곳은 목욕탕 처럼 다 같이 들어가서 씻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마침 그 때 우리 앞에 들어갔던 당당한 여사님과 포항 개띠언니가 마치고 나왔기에, 나와 임소는 원래 가기로 했던 작은 샤워장을 향해 갔습니다. 

샤워비용은 2000 투그릭.

참고로 투그릭 환율은 당시 1.05배. 물가 단위도 비슷해서 그냥 우리나라 2000원 같은 마음으로 쓰면 되었습니다. 그러나 탈랑탈랑 씻을 준비만 하고 그 돈을 잊고 나온 우리. 평야를 달릴 땐 돈이 필요없어요. 덕분에 몸에 배인 여행습관인가... 내가 돈을 관리했으니 다시 돈을 가지러 숙소로 향했는데, 마침 샤워후 마실나온 당당한 여사님한테 5000원..이 아니라 투그릭을 빌릴 수 있었습니다. 아싸 땡큐, 샤워하러 고고.

돈을 내니 여자아이가 천투그릭을 거슬러줍니다. 나중에 임소 말을 들었더니, 나 같은 손님이 많았는지 내가 돈 가지러 갔음에도 임소가 샤워하러 들어가자 사다리를 타고 샤워장 위로 올라가 물을 부어주더랍니다.

들어간 샤워장은 나무 판자로 나뉜 두 칸 안에 샤워꼭지가 있습니다. 뻑뻑한 샤워꼭지를 비틀어 열었더니 샤워헤드 '구멍' 두 개에서 물이 나옵니다. 두 개의 샤워헤드의 구멍 두 개. 아주 졸졸 흐르는 물. 그나마 임소 칸은 두 줄기가 같은 방향으로 흐르는데 내 칸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뻗어나갑니다. 명목상 샤워라니까 샤워지 이게 무슨 샤워야. 머리 긴게 이렇게 원망스러웠던 적은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샴푸를 제대로 헹굴 수 없으니 두피만 씻을 정도로 샴푸를 쓰게 됩니다.

500투그릭 하는 1L 생수 한 통만 있었어도 머리 감는게 이렇게 힘들지는 않았을텐데. 머리 감고 샤워까지 했겠네.  1L 생수 한 통의 귀중함을 몸으로 격하게 느끼게 된 계기였습니다. 혹시 주변의 누군가가 물을 낭비한다거나 삶에 대해 툴툴거릴 땐, 두 줄기 눈물 물로 샤워를 한 번 하도록 해야합니다. 몽골로 보내세요.

긴긴시간 고생하면서 간신히 샤워를 마치고 나와 마주하는 밤의 평원은 아주 고요하고 달빛이 눈 부셨습니다. 나름 깨끗한 몸으로 게르를 향하니 마음이 평안해집니다. 우리와 다른 방향으로 샤워갔던 일행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쪽 샤워장이 있는 방향으로 걸어가보기로 했습니다. 중간에 만난 일행들. 그 곳은 물이 충분할 뿐만 아니라, 수세식 화장실도 있고, 음료수까지 한 잔 하고 오셨다고들 하네요. 가격은 2000투그릭 동일한데. 그런데 왠지 부럽진 않았습니다. 샤워할때는 이게뭐야 투덜거리긴 했지만 평원에서 평원다운 샤워를 한게 더 좋았습니다.  

두 줄기 물로 씻어낸건 모래만이 아닌 것 같아서. 

   


미안하다. 사랑한다.

샤워를 마치고 개운한 기분으로 저녁상을 마주했습니다. 바얀작의 밤은 낮과 달리 서늘하기가 가을 같아서 식욕마저 가을이라고 착각 한 것 같았습니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배가 고파서 그런 것도 있었지만 실제로 풍성한 식탁이었죠. 윤하가 끓인 김치찌개와 김과 평원 한 가운데서 만나는 오이그리고 주인 아저씨가 저 먼 (저승)나라로 보내버린 양의 고기와 순대가 한 상 가득했습니다.

우리는 밤과 저녁을 같이 즐기고 싶어서 밖에 상을 차릴까 했지만 바닥이 모래였고 빛도 식사에는 마땅치 않아서 게르 안에 식탁을 차렸습니다. 뭐 결국 밥그룻을 식판삼아 이것저것 담아든 몇몇의 사람들은 밖으로 나오긴 했지만요. 그리고 저도 제 밥그릇에 김치찌개와 양고기 순대를 조금 담아 밖으로 나왔습니다. 오이는 이미 입에 가득물고, 김은 한두봉지 다른 손에 들고 나와보니 몇몇 사람들이 자리를 펴고 앉아서 먹고 있었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달빛을 조명삼아 먹는 저녁은 음식이 뭐든 상관없이 산해진미... 일 줄 알았는데 식어버린 양 순대는 그 기대를 무참히 저버렸습니다. 저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순대는 없어 못먹고, 당면 들어있는 순대보다 내장을 더 좋아해서 대학교 앞 순대가게 아줌마도 혀를 내두른 그런 사람입니다. 그런데 한 입, 그 이상은 도저히 손이 가지 않았습니다. 따뜻했다면 조금 나았겠지만 식어버린 탓에 냄새도 더 났었고 (전 냄새에 약합니다.) 뭣보다 순대가 아삭아삭하게 씹히더란 말이죠. 간이었나봅니다. 저는 소의 생간도 못먹습니다. 아삭거려서. 두 입 근근히 씹고 조용히 내려놓았습니다. 

몽골 사람들은 맛있게 먹는 음식인데, 주인의 정성을 버릴수는 없다고, 어디선가 소주를 꺼내 안주로 순대를 드시는 영어선생님과(대체 그 많은 술은 가방 어디에 담아오신건가요? 가방안에 도라에몽이라도?!) 생각보다 먹을만 하다고 말 한번 꺼냈다가 나와 임소의 순대를 모두 해결해야 했던 물장수, 그리고 너무나 맛있게 먹던 로사. 이 사람들 덕분에 우리는 주인의 정성을 내다 버리는 몰염치한이 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일전에 어디선가 이런 글을 본 적이 있었습니다.
- 사람이 먹기 위해 죽이는건 너무 불쌍하잖아요
- 그래, 하지만 그것도 세상의 일부란다. 네가 먹지 않아도 어디선가는 음식이 되기위해 죽임을 당하겠지
   그 생명들이 불쌍하다면 네 앞의 음식을 남기지 말고 다 먹으렴. 그들을 네 일부로 받아들이렴. 
   그래서 그들이 보지 못한 내일을 네가 대신 봐줘야 하지 않겠니.  

이런 맥락에서 저는 말 합니다.
양. 미안하다. 사랑한다. 근데 순대만 빼고.



요가학원


 

요가 [Yoga]

- 요가는 명상과 호흡, 스트레칭 등이 결합된 복합적인 심신 수련 방법을 말한다. '요가'라는 말은 'yuj'(결합하다)에서 시작해서 'yoga'가 되었으며 요가의 모든 과정에서 자주 나타나는 '마음의 성질'이라고 할 수 있다.

- 어떤 이에게는 돈내고 벌 받는 것 같이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차를 타고 오랜시간 달리는 일정은 의외로 체력소모가 큽니다. 그래도 바얀작엔 일찍 도착한 덕분인지 아니면 샤워를 한 덕분인지 생각보다 피로도가 낮았습니다. 우리는 적당한 포만감과 간만의 상쾌함에 마음이 평안해 졌습니다. 자기엔 밤이 아깝고 맑은 달빛이 아까워 게르 안에 깔린 카페트를 들고 나왔습니다.

 

원래 게르 안의 카페트를 들고 나오면 안되는데, 어차피 게르 안도 흙바닥이고, 밖도 흙바닥이라는 사실에 미안한 마음은 조금 덜고(안이나 밖이나 같은 흙이라고), 내일 새벽에 얼른 가져다 놓자고 하고 밖으로 나오니 한 사람, 두 사람, 결국 모두가 밖으로 나왔습니다. 우리는 카페트를 붙이고 둘러앉아 작은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달 너무 밝다. 이정도 밝으면 썬크림 발라야 하는거 아니야? 우리끼리 앉아서 웃고 떠들다가 게르에 뭔가 가지러 들어가는데, 숙소 앞 게르 뒷편에, 달 그림자 속에 누가 누워있네요. 민수야 거기서 뭐하니? 그냥 있어요. 혼자 왕따놀이 하지 말고 우리랑 놀자. 물건을 가지고 민수를 데리고 다시 일행에 합류 했습니다.

   

한참 이야기를 하는 중에 임소가 스트레칭을 시작했습니다. 여행하는 동안 몸이 굳어서, 너도 해 스트레칭. 그래서 저도 스트레칭에 동참하게 되었죠. 이거 됨? 당연하지. 이거됨? 난 이것도 된다. 요가를 좋아해서 몸이 유연한 임소와 나름 무용하는동안 유연해진 저는 번갈아 가면서 폴더도 접고, 다리도 찢고 이런저런 스트레칭을 했습니다. 시작은 운동이었으나 갈수력 경연장이 되어갔다는건 함정이죠. 야, 물장수 너도해봐. 난 딱딱해서 안돼. 그래도 해봐. 아, 진짜 못하는구나. 그럼 로사 해봐.

 

테니스를 취미로(라고 하기엔 피부색은 프로급) 하는 로사는 어려운 동작도 곧잘 했습니다. 분명 어려서 그런거라고 생각하는데 옆에서 같이 담소를 나누던 로사 아버님도 같이 스트레칭에 동참 합니다. 같이 하시겠냐고 권하긴 했지만, 연세가 있으셔서 진짜 하실거라는 기대는 안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생각보다 잘 하십니다. 앞으로 꽤나 많이 숙여지는걸 보고 우리가 오오- 감탄사를 연발하자 신이 나셨는지 물구나무까지 섰습니다. 로사 아버님 멋지십니다. 로사의 운동신경은 유전인가봅니다.

 

옆에서 웃으면서 구경 하고있는 민수도 해보라고 했더니 글쎄 하는말이 '몽골남자는 그런거 안해요'. 아니 리듬체조 하라는게 아니라 다리 찢어보라고. 남자도 해도 괜찮은거야. 계속 어르고 달래고 명령하고(응?) 꼬드겨서 결국 민수도 다리를 찢었습니다. 딱딱하게 생겨서 못할 줄 알았는데 잘 하네요. 이런거 안한다는 몽골남자, 다리찢기 성공하고는 엄청 뿌듯한 표정을 짓습니다.

 

달이 밝은 밤엔 절대 빠지지 않는 이야기가 있죠. 전세계 공통. 귀신 이야기.

게르 귀신. 뭐더라 지나가는 나그네에게 음식 대접하는 귀신이었나, 광야를 지나다니는 귀신 이야기....를 들었는데 전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무서운 이야기는 제 수용분야(?)가 아니라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 것 같습니다. 몽골은 유목민족이라 지나가던 나그네가 게르에 방문하면 음식과 마실 것을 대접하는게 풍습이라는 이야기만 기억나네요. 아, 그래서 징기스칸의 아버지가 유목민으로 위장한 적들의 게르에 방문해 음식을 받아먹고 독살당했다는 교훈적인 이야기도 같이 들었습니다. 역시, 귀신보다는 사람이 더 무섭군요.

 

 

이야기가 계속되면서 어른들은 자러 들어가고, 임소와 나, 물장수, 로사 민수만 남았습니다. 보름달이 태양만큼 밝았던 밤, 잦아드는 이야기 소리가 부는 듯 안부는 듯 일렁이는 바람에 흩어지고, 넓은 대지위에 우리만 누워있어 그대로 자도 좋을 것 같았습니다. 어차피 잘 밤이면 밖에서 자자. 지나가는 차도 없고, 사람도 없고, 말이 지나가다 밟으면 어떡해? 말 없잖아. 새벽에 올수도 있잖아. 사실, 말은 사람이 있으면 안밟고 피해간다고 들어서 걱정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노숙은 아직 낯설어서 카페트를 들고 게르로 들어가 자기로 했습니다.

 

문 닫기 전, 뒤돌아 다시 바라본 달빛 가득한 평원은 계속 바라보고 있음에도 아쉬울 정도로 아름다웠습니다.   

 




쉬어가는 코너 - 인물탐구 3편
- 로사

....는 나중에 합시다. 기억이 안나 + 사진 어딨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