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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오리너구리/밖을

[몽골] 2일. 밤. 어르덴달라이.



꿈이었다고

 


[명사]
1. 잠자는 동안에 깨어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사물을 보고 듣는 정신 현상.
2. 실현하고 싶은 희망이나 이상.
3. 실현될 가능성이 아주 적거나 전혀 없는 헛된 기대나 생각.



두세시간쯤 이동하다가 길 위에 멈춰 섭니다. 매 두시간마다 서는건 아니구요, 텀이 길 때는 세네시간만에 서기도 합니다. 몇일을 연달아 운전해야 하는 운전기사분을 생각하면 중간중간 쉬었다 가는건 당연합니다. 세 대의 차가 한 팀으로 움직이다보니 쉬는 포인트에서 만나 상봉(?)하는 재미도 쏠쏠하게 있습니다.   









길을 가다보면 돌무더기들이 길 위에 있습니다. 어워라고 하죠. 우리나라로 치면 성황당 그런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돌이나 돈같은 걸 얹고 소원을 빈다고 합니다. 저도 돌을 하나 얹고 소원을 빌었습니다. 소원을 빌때는 해가 지나가는 방향으로 어워를 돌아야 합니다. 
건물 안에만 들어갔다 나오면 방향치가 되지만, 툭 트인데로 나오면 나름대로 해, 달, 아파트 방향(?)을 이용하여 동서남북을 잘 찾습니다. 



 
돌 대신 소 머리를 바쳤나봐요. 부유하시군요.
 


돌을 하나 얹고 소원을 빌면서 해가 지나가는 방향으로 돌았습니다. 
사실 이날 구름이 많이 껴서 해가 어느길로 지나갔는지 좀 아리송 했는데 차가 한 대 와서 빙글 돌고 가더라구요. 그 차와 같은 방향으로 돌았습니다


 저기 멀리 먼지 바람을 일으키며 달려오는 차 한대


                                               쨘-  



여행을 하다보면 길 위에서 어워를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워가 보일 때 마다 돌을 얹고, 소원을 빌었습니다. 몽골에 있는 동안 같은 소원만 주구장창 빌면 하늘도 지겨워서 소원을 들어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열심히 돌았습니다.


원래 일정대로라면 여행 초반에 여기저기 많은 곳을 방문하고, 일정 진행에 따라 점점 떨어지는 체력은 차에서 자면서 회복하게 되었을 겁니다. 아마 많은 여행사들이 같은/비슷한 일정으로 몽골을 돌아보는 이유도, 마지막 날 어르덴달라이에서 울란바토르로 나오는 이동거리가 가장 긴 이유도 거기 있겠죠. 

우리는 여행 초반의 설레이는 마음과 에너지를 팝콘처럼 튕겨지는 몸을 건사하는데 다 쓰고 말았습니다. 심지어 두번 째 쉴 때는 배고픈데다가, 날도 추워져 우리는 어쩐지 서글퍼 졌습니다. (아니 저만 서글펐나요, 저는 춥고 배고프면 서글픕니다.)

    

가도가도 끝은 보이지 않구요,



해가 떨어지니 점점 추워집니다.


                          추위와 함께 등장한 유목민 패셔니스타



기사님의 말에 따르면 약 여섯시간 정도를 달리면 도착한다고 하니, 쉬는시간까지 포함해서 7시간 정도. 슈퍼마켓에서 3시 조금 넘어서 출발했으니까 도착하면 밤 10시. 평원은 분명 불 한점 없을테고, 도착하면 게르에서 바로 자야 할 수도 있겠다는, 뭐 그런 일정을 예감하고 있을 때 창 밖으로 저무는 해가 보였습니다. 

몽골 평원에 대한 감동은 추위와 배고픔에 잠시 밀려난지 오래였습니다만, 오후라는 시간은 그 자체로 사람의 마음을 너그럽게 만드는가 봅니다. 흔들리는 차에서, 불평도 없이, 그냥 창 밖의 해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흔들리는 차에서 목 디스크를 무릅쓰고 잠들었습니다.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립니다. 실눈을 뜨고보니 하얀 건물이 보이고 불빛이 보입니다. 도착했구나. 기쁜 마음에 빙긋이 웃음을 띠고 마른눈 감았다 떴습니다. 어라? 불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보이는 것은 어둠 속에서 흔들리는 자동차 헤드라이트 불빛 뿐입니다. 꿈이었네요. 아쉬운 마음에 마른눈을 비비고 다시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흔들리는 차의 움직임이 멈췄습니다. 눈을 가늘게 떠보니 차가 멈춰서있고 차 앞에 몇몇 사람들이 서있네요. 다왔구나. 아픈 목을 천천히 돌리며 눈을 감았다 떴습니다. 사람들은 사라지고 없습니다. 이런. 또 꿈이었네요. 얼마나 도착하고 싶었으면 꿈에 연달아 두 번이나 낚였습니다.

배도 고프고 슬슬 목이 아파서 더는 못자겠다 생각했지만, 잠시 후 다시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저절로 눈이뜨여 창 밖을 보니 희미하게 유령같은 건물이 하나 보였습니다. 사원같기도 한 건물을 어둠속에 지나 보내고 나니 정신이 좀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저 앞에 밝은 빛이 보였습니다. 또 꿈인가 싶어 눈을 몇 번 감았다 떴지만 불빛은 여전히 있었습니다.

"도착한건가"
마른 목소리로 혼잣말을 중얼거리는데 같이 타고있던 로사 어머님과 로사 아버님도 깨어나 움직이는게 보였습니다. 시간은 밤 11시가 가까워져 있었고, 우리는 춥고 배고팠습니다.
그 불빛의 정체는 주유소였습니다. 아까 그렇게 밟아 넣더니만, 그걸 다 쓰도록 달려온건가. 그렇다면 꽤나 많은 거리를 왔을텐데. 앞자리에 앉아있던 임소가, 목을 부러뜨려라 달린 차는 사실 시속 60km 정도로 달렸다는 이야기를 해줬습니다. 그리고 운전기사님과 몇마디 이야기를 나누더니 20km 정도 남았다는 이야기를 해줍니다.
 
이제 곧 도착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다시 잠이오지 않았습니다. 물론, 이미 충분히 자기도 했지만, 첫 숙소에 도착하다는 생각에 조금 설레였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어둠속의 평원, 그리고 게르가 보였습니다.




 


이명 소나타

 

소나타 (이탈리아어/Sonata)
[명사]<음악>16세기 중기 바로크 초기 이후에 발달한 악곡의 형식. 기악을 위한 독주곡 또는 실내악으로 순수 예술적 감상 내지는 오락을 목적으로 하며, 비교적 대규모 구성인 몇 개의 악장으로 이루어진다.



어둠속에서 우리는 짐을 내렸습니다. 우리가 묵을 게르는 두 군데, 그리고 윤하와 민수는 주인과 같은 게르에서 머물겠다고 했습니다. 게르에 들어가 짐을 내려놓고 우선 옷부터 갈아입었습니다. 너무 추워서 견딜수가 없었거든요. 

유독 추위를 많이타는 저는, 다른 사람들은 멀쩡한데 저만 추위에 떨면서 일어나면 아침에 눈물이 납니다. 왠지 세상이 나만 미워하는 것 같이 느껴지거든요. 그래서 몽골의 밤이 춥다는 말에 겨울용 트레이닝복에 밤에 껴입을 셔츠만 몇개를 싸갔는지 모릅니다. 가지고온 얇은 옷 다 껴입으면 되지, 라는 임소와 달리 제 짐은 절반이 잘 때 입을 옷이었습니다.    

옷을 갈아입고, 물티슈로 세수를 꼼꼼히(이 때 까지만해도 꼼꼼히)한 후 게르 밖으로 나갔습니다. 사람들은 짐을 풀고 다른 게르에 차려진 저녁을 먹기위해 게르 안으로 들어가 밖에는 저 혼자 있었죠. 고요한 평원에, 아무 소리도 없는 평원에 달빛이 가득했습니다. 바람이 불었지만 겨울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었기에 서늘함을 느끼면서 바람과 달빛 한 가운데 서 있었습니다. 



두근두근, 울렁울렁 



일렁이는 마음을 주체하기 힘들어 무작정 달려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방향을 바꿔 계속 달렸습니다.

예전 언젠가 보았던 어둠속의 길에는 달빛이 발목까지 찰랑였습니다. 약간의 취기에 저의 눈빛이 흔들리고, 흔들리는 눈빛에 세상도 흔들렸던 그 때, 다른 불빛도 없이, 물 처럼 흘러가는 달빛을 보고 달빛을 떠올려볼까, 하는 마음으로 손을 뻗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만큼의 감동이 밀려와 숨이 차올랐지만 파득파득 뛰어다녔습니다. 

어느 정도 뛰다보니, 의외로 앞이 툭 트인 평원에서는 앞으로 계속 뛰어갈 엄두가 안난다는걸 알았습니다. 뛰어도 뛰어도 풍경이 다가오지 않아 내가 뛰는건지, 제자리에서 뛰는 시늉을 하는 건지 헷깔린다는, 좀 웃긴 생각이 들자 뛰고싶은 마음이 가셔 버렸습니다. 그래서 저는 잠시 숨을 고르고 방향을 돌려 게르로 돌아가 사람들과 늦은 저녁을 먹었습니다.

여행 중 우리의 요리를 담당하는 홀랑은 한국음식을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장님이 음식은 한국 재료를 다 준비하셨다고 하네요. 창작음식을 즐겨하는(?) 저로서는 어떤 음식이 나올지 좀 기대도 됐는데, 의외로 메뉴는 너부리 라면. 시장이 반찬인지라 뭔들 못 먹었겠습니까. 다만 너부리가 점점 증식을 해서 국물이 다 사라지는 사태가 발생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열심히 먹었지만 
모두가 배불리 먹고도 열두 광주리가 남았... 아니. 몇 그릇이 남았습니다. 

적당한 라면 국물과 김치가 남자 영어 선생님은 소주를 꺼내셨습니다. 생각해보니 점심 먹을때도 영/수 선생님 테이블은 소주를 마셨던 것 같네요. 첫 날, 우리가 설레임으로 침대에서 잠을 설치던 그 시간, 영어선생님과 수학선생님 부부는 울란바토르 시내 구경 및 술 한잔 하러 나가셨다고 합니다. 두분 다 술을 아주 좋아하시는가 봅니다. 
술을 장기적으로 쉬고있는 저는 술잔을 사양하고 앉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가 챙겨먹을 약이 생각나 게르 밖으로 나왔습니다

달은 구름에 아련히 가려있었습니다.
약 먹으러 다른쪽 게르로 넘어가던 중, 다시 달에 시선을 뺏기고
멍하니 섰습니다. 바람도 잦아들어 아무 소리도 안들리고 멍하니 달만 바라보던 제 귀에 이명이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명을 들어본적 있으신가요?

이명 [耳鳴]
[명사]<의학> 같은 말 : 귀울림.


뭔가에 집중하다가 문득 정신을 차렸을 때, 주변이 아무 소리도 안날만큼 고요할 때, 이명이 들리고는 합니다. 웅웅거리는 소리가 귀에서 몸 안쪽으로 울리기 시작해 머리와 온 몸을 울리고 다시 귀로 나오는 듯한 느낌이 드는 가짜소리입니다. 그 소리를 멈추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진짜 소리를 내는 것입니다. 누가 내주는 소리가 아니라 내가 직접 "흠" 하고 소리를 내면 이명은 거짓말처럼 사라집니다.


이명은 처음엔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리처럼 웅웅 거리다가 잠시 후 낯익은 음으로 바뀌었습니다. 익숙하고 조용한 음이 귓속에서 머리로 울려나왔습니다. 달빛이 비치는 잔잔한 물결을 떠올리게 만들었다는 그 음악이 나즈막하게 그리고 천천히 귀를 울리고, 머리를 울리고, 온 몸을 울려 마치 온 세상이 월광소나타로 가득찬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아무도 듣지 못하는, 제 기억이 불러낸 소리. 

임소가 게르에서 나와 말을 걸 때까지, 침 삼키는 소리나 발걸음을 옮길 때 생기는 소리에도 이 소리가 사라질까, 꼼짝도 않고 그 자리에 서서 달빛과 음악을 만끽했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아주 큰 사치를 누린듯 한 마음에 기분이 좋았습니다. 

 








돼세랄이 아직 손에 안익어서 사진이 영 맘에 안드네요. (찍어야 손에 익지;;)

 





쉬어가는 코너 - 본격 인물탐구 1편

 

인물 1-1 영어선생님


누가 영어선생님일까요?

               ①        ②       ③                ⑤

정답 : ④ 가만히 보면 글씨색이 다름 ㅋ
① : 민수  ② : 선배님   ③ : 로사아버님   ④ : 영어선생님   ⑤ : 물장수 / 박신양



본명 - 이종M (개인정보 보호차원에서 완벽한 실명은 쓰지 않습니다)
사는 곳 - 서울시 어딘가
별명 - 영어선생님
직업 - 영어선생님
특이사항 - 수학선생님과 부부, 술을 매우 좋아함, 노래를 굉장히 잘 부름 (감동 ㅇㅁㅇ)




 씻으면 눈이 맑아진다는 샘물로 열심히 세수중인 영어선생님과 홀랑
 가끔은(사실 자주) 괴짜같은 면을 보이셨지만,  



이런 모습 또한 영어선생님의 한 부분이라고 느꼈습니다.
이야기 도중 잠깐잠깐씩 말을 멈추실 때가 있었는데, 잠깐의 침묵에 무게가 있는 느낌??
진지한 괴짜라는 표현이 적절한가 모르겠습니다.




체구가 큰 편은 아니신데, 어디서 그런 성량이 나오는지 모르겠어요 -_- 
어두운 밤을 울리는 노래도 노래지만, 최고는 말 달릴때 입니다.

보통사람 : 춰-
영어선생님 : 춰어어어어아- 

오죽했으면, 뛰지 않도록 교육받았다는 말도 뛰게하는 영어선생님의 호령;;;




인물 1-2 수학선생님




본명 - 김M아 (개인정보 보호차원에서 완벽한 실명은 쓰지 않습니다)
사는 곳 - 서울시 어딘가
별명 - 수학선생님
직업 - 수학선생님
특이사항 - 영어선생님과 부부, 술을 매우 좋아함, 노래를 굉장히 잘 부름, too. (역시감동ㅇㅁㅇ)




수학선생님을 생각하면 박신양이 자동링크 되는건
볼 때 마다 잘생겼다- 며 칭찬해주신 덕분입니다.



하지만 제가 가지고 있는 수학선생님의 이미지는



여전사 ㅋ


이 후에 이야기가 나오겠지만,
포항개띠언니, 당당한 여사님, 수학선생님을 보면서 
답답했던 마음 한구석이 개운해진 데가 있었습니다.  



멋진 수학선생님이지만 가끔 허당 기운이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땐 어디선가 등장하신 영어선생님이 자연스럽게 방향을 돌리십니다.
그리고 영어선생님이 괴짜로 변신할 땐 수학선생님이 등쟝- 하시구요.

왠지 다른 듯 잘 맞는 두 분을 보니  이것이 바로 천생연분??





제가 생각하는 삶과 우리나라의 결혼 풍습은 공존하기 힘들다고 생각했었는데,
우리나라에도 몽골 여행을, 지리산 종주를 그리고 단순한 여행 너머까지 같이하는 부부가
실존한다는 것을 제게 알려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ㅋ

지금처럼 앞으로도 언제나 행복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