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자]로 이름을 날린 한강의 장편소설 중 한 권을 읽었어
도서관에 처박혀 닥치는 대로 책만 읽었던
대학 3학년때였나.. 이젠 기억이 잘 안나는 어떤 가을에
'채식주의자' 이전에도 이름은 한 번 들어본적 있던 작가
이름을 기억하는 이유는 한강이 본명인가? 에 대해 의문을 품었기 때문이고
사실, 그게 전부. 책을 읽지도, 작가에 대해 알아보지도 않았어.
왜냐면 그 때는 정말 닥치는 대로 읽어보고 싶어서
낯선 책들 사이에서 서성이던 시절이었거든.
철학서도 읽었고, 무용이나 무대 설치같은 것도 읽었고,
심리, 법률 상담서 같은것도 읽느라
바빴어 ㅋ
여튼, 그래서 대체 무슨 책인가 채식주의자 빌리러 갔다가 없어서
빌리게 된 책.
[바람이 분다, 가라]
2010년 발간
책 읽는건 좋아하지만, 뭔가 평가하는건 잘 못해서
이 책에 대해 논평할 말은 없어.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정희와 인주의 삶에 녹아들면서 느껴지던 차갑고 축축한 느낌이 별로였어.
왜냐하면, 왠지 아는 듯한 느낌이었거든.
어쩌면, 안다고만 느꼈는지도 몰라. 내가 느낀 우울감과 눅눅함은
겨울, 어느 길을 걸어도 떼어내지 못하던 그 느낌과 닮아서.
미시령을 가본적은 있던 것 같은데, 기억나지는 않아.
그게 뭐가 그리 중요하겠어. 가보지 않아도 알 것 같은데.
아니, 몰라도 상관 없어보였어.
평론가들이 이 글을 어떻게 평가했는지는 몰라
그냥, 내가 읽고 느낀점은
고등학교때 내가 읽었으면 정말 좋아했었겠구나,
그 문체와 감수성에 물기가 너무 많아서, 지금의 나는
거기에 잠식당할 것 같아.
반쯤 녹은 자잘한 얼음조각들이 옷 속 어딘가에 들러붙어
축축한 물을 내 몸에 계속 묻히는 느낌.
한가지 더 생각한 것이 있다면
나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봤다는 것.
무난하고 일상적인 삶에 매몰되기 싫어하면서도, 특별한 삶을 위해 가져야 할 경험과 감정과 관계의 소용돌이를 받아들이고 겪어낼만큼 나를 강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다는 것. A or B, 언제나 80%의 클라이막스가 보이면 옆칸 사다리로 도망가버리기 위해 거의 항상, 두 가지 패를 손에 쥐고 산 것 같다는 생각.
감수성이 그득그득한 소설을 읽고나면, 내가 그 삶을 산 것 처럼 지쳐.
하지만 나는 그렇게 살지 않았지.
감정의 꼭대기를 오롯이 버텨낸 적이 얼마나 있나.
소설은 소설이고, 일상은 일상이다.
하지만 소설을 읽었더니 일상에 습기가 더해졌네.
한강의 다른 소설을 읽기엔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할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