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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않는늑대/동양늑대

꿈 이야기] 20141130 _ 골목길 저편에는...

 

골목길이었다.

그 길은 나 한명 지나가면 옆으로 한명도 지나가지 못할 것 같은 좁은 골목길이었다. 차 한대 지나갈 수 없을 것 같은 그런 좁은 골목길의 양 옆엔 연한 살색과 희끄무레한 색들의 천으로 만들어진 장막이 쳐져 있어, 좁은 길은 밝긴 했지만 흐리멍텅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 길 끝까지 잰걸음으로 걸어갔던 나는 길의 끝에서 나를 반기는 많은 동물들을 보았다. 커다란 개도 있었고 털이 더러워진 고양이들도 있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야생동물들도 한데 어울려 나를 보며 반갑다고 앞발을 들고 소리를 냈다. 나는 동물들을 향해 손을 뻗다가 말고 그들이 가두어져 있는 나무 울타리 옆의 더 작은 샛길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걸어 들어갈수록 길은 좁아졌고 길은 점점 오른쪽으로 굽었다. 나는 일말의 머뭇거림 없이 그 길을 따라 걸어갔다.

그 길 끝은 다른 골목길을 향해 트여 있었다.

좁은 샛길에서 몸을 겨우 빼내어 큰 골목길에 합류했다. 원래 그랬던 것 처럼,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 처럼, 마치 규칙으로 정해진 것 처럼, 나는 오른쪽으로 몸을 돌렸다. 저기 멀리 보이는 그 골목길의 끝은 낯익은 풍경이었다. 아까 나를 반기던 동물들이 있던 곳이었던 것이다. 나는 마치 홀린듯 그곳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길은 아주 조금씩 좁아지기 시작했다.

얼마동안 걷자, 나의 기억 최초에 남아있는 장막들과 장막의 그늘이 보였다. 조금만 더 가면 그곳에 다시 도달하게 될 것 같았다. 그 때,

내 오른쪽으로 꽤 넓은 길이 보였다. 길은 한 방향의 길에서 순식간에 두 갈래 길이 되었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냥 앞을 보고 걸어갈까 생각했지만 찝찝한 만큼 호기심도 강해졌다. 그래서 고개를 돌리기로 했다.  목을 돌리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아서, 삐걱거리는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그 골목길 저편에는 Y 자 모양을 만드는 두 갈래의 길이 있었고, 길의 양 옆에는 넓은 테이블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는 많은 동물들의 머리가 올려져 있었다.   

돼지의 머리, 코끼리의 머리, 개와 고양이의 머리.... 그 머리들은 피 한방울 묻어있지 않았고 하얀 테이블 위에 얹혀있었다. 머리들의 행렬은 마치 어떤 의식을 위해 준비된 것 같았고, 그것들을 본 나의 마음은 굉장히 불편하고 아팠다. 

고개를 재빠르게 돌려 다시 앞으로 향했다. 그리고 나를 반기는 그 동물들을 향해 걸어간 뒤, 다시 울타리 옆의 샛길로 걸음을 옮겼다. 오른쪽으로 굽고, 점점 좁아지는 그 샛길로.  

그러기를 두세차례 반복하던 중, 나는 나의 걸음이 동물들의 머리가 나열된 골목으로 향했음을 깨달았다. 그 곳은 생명의 기운이 하나도 없었고 그저 정갈한 동물들의 머리만이 있었다. 한 줄로, 두 줄로 나열된 테이블을 바라보면서 나의 마음은 이상하게 불쾌감이 사라졌다.

그래, 저 머리들도 어딘가에 쓰이기 위해 준비된 거겠지.

나는 점차 눈 앞의 상황을 납득하고 있었다. 골목 끝의 두 갈래 길에 다다랐다. 왼쪽은 어두컴컴한 길이었고 오른쪽은 밝은 길이었다. 나는 오른쪽으로 걸음을 내딛었다.

길은 다시 점점 좁아지기 시작했다. 어두워지진 않았다. 다만 좁아질 뿐이었다.

길을 따라 얼마를 걷자 길의 끝이 보였다. 나는 넓은 길에 합류했다. 새로운 그 길은 바닥이 블럭으로 되어 있었고 왼쪽은 집인지, 벽인지 알 수 없는 어떤 것들이 주욱, 계속 연결 되어있었으며 오른쪽은 발목높이 정도의 연석이 줄지어 길을 안내하고 있는 것 같았다. 연석 너머는 가파른 돌더미가 수직에 가까운 경사로 이어져 있었고 덕분에 시야가 탁 트여 저기 멀리까지 볼 수 있었다.

그 곳은 산비탈에 만들어진 동네였다.

길 아래로 하얗고 작은 집들이 벽을 붙인채, 오밀조밀 가득차 있었다. 집들 사이로 골목들도 많아 보였다. 흰 벽에 뚫린 창문은 목욕탕 창문정도 작은 크기밖에 없어서 마치 도자기 유령들이 숨 쉬기 위해 콧구멍을 벌리고 모여있는 형상 같았다.

위로 연결된 풍경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나는 돌아보기를 멈추고 위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인기척은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나는 공포감을 느끼고 있었다. 누군가 나타나서 나를 해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숨을 곳 없이 완전히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이 공포로 다가왔다. 길을 따라 한참을 올라가면서 몇번의 갈림길을 지나고 그 때마다 나는 두 길중 어디를 가야하나 직감처럼 선택을 했으며, 길을 가는 내내도록, 나는 누군가가 나를 해칠수도 있다는 생각에 뒤를 곁눈질 하며 걸어갔다.

내가 떠나온 그 길은 분명 폐쇄적이고 나를 해칠 이 없는 안전한 길이었다는 생각이 들면서, 동시에 나는 다시 그곳으로 절대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한편으로는 그 안전함이 그리웠지만, 한편으로는 그립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꿈이 서서히 깨는것을 느끼면서 나는 멀리서 나와 내가 걸어가는 길을 보게 되었다.

 

산 비탈의 그 마을에는 오밀조밀 하얗고 작은 집들이 참 많았다. 그리고 나 홀로 그 산비탈의 마을을 걷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