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오후는 덥지만 바람이 많이 불어서 건조하고 따끈따끈했어
언제 같았냐면
작년 여름
제작년 여름
거제도 어느 사람없는 산책길에 차 몰고 가서 시동끄고 창문 열어제낀 차 안에 혼자 앉아 미리 사간 커피 마시며 책 읽던 그 때 같았어...
뉴욕에서 링컨센터를 나와 센트럴 파크로 걸어가던 그 때 같았어
자연사 박물관을 나와 아쉬워 하던 그 시간 같았고
사우스 뱅크에서 수영하다 나와 널부러져 쉬던 오후 같았고
에일리어 비치에서 라군에서 수영하다 나와 책 읽던 그 때 같았어
몽골 사막에서 그늘에 앉아 물 마시며 쉬던 그 더위 같았고
산더미 같은 가방을 매고 순천만 방조제를 향해 걷던 그 시간 같았고
시간표도 없는 항구에 앉아 배를 기다리던 남해안 어느 섬의 여행 같았고
케냐 시내에서 나이로비 공항을 향하던 택시안의 더운바람 같았고
수업이 일찍끝나 성당으로 걸어가던 그 토요일 오후 같았고
친구들이 운동장 뛰는걸 보며 내 차례를 기다리던 체력장 날 같았어
길 위에서 뛰어가는 바둑이를 보며 아, 아빠가 오는가보다 생각했던 그 시절 같았고
발레 선생님과 언니들이 무서워 가기 싫었던 발레학원 셔틀버스를 기다리던 오후 같았어.
덥고 건조하고 따끈따끈한 여름의 바람.
커피를 주문하고 기다리면서 잠시 앉아있던 5분,
나는 기나긴 시간과 많은 공간을 다시 경험하면서 아주 오랫만에 하늘을 올려다 봤어. 아, 나는 저런 색채 찬란한 세상을 살기위해 회사에서 나왔었지.
회사에서 나오기 전 일년의 기억은, 다른게 아니라 회색밖에 없었어.
좋은 사람들, 힘들긴 했지만 그래도 머리 터질듯이, 스트레스 받으면서도 스스로를 바짝 조여가며, 수동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 처럼 나를 운전하는 기분으로 스릴있게 일 했지만, 그 세상은 희안하게도 계절의 변화도 기억에 남지 않고, 색채도 하나도 없었어. 회색과 회색의 세상.
아, 세상은 저렇게 태양아래 찬란하구나.
생명력 넘치는 한여름 낮, 나는 소박하게 기도했네,
신이시여, 제게 다시 봄날을 허락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