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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않는늑대/동양늑대

어른


아줌마. 울어?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들었더니 왠 꼬마 아이가 뒤돌아 의자 등받이에 기댄채 날 쳐다보고 있었다.
아이의 엄마처럼 보이는 사람의 뒷머리가 의자 사이로 보였고, 머리가 유리창에 부딪힐 듯 흔들리는걸로 봐서는 깊이 잠든 것 같았다.

아줌마 왜 울어?
......아줌마 아냐.
.....

아이는 턱을 의자끝에 기대고 등받이를 꼭 끌어 안았다. 나를 쳐다보는 눈은 꼭 '그걸 물어본게 아닌데'라고 말하는 것 같은 눈빛이 담겨 있었다.
잠시동안 아이를 쳐다보다 시선을 거둬 창 밖을 바라봤다.
아이가 잘못본게 아니다. 나는 울고 있었다. 아니, 눈물이 조금 났다. 그래도 눈물이 날 만큼 감정이 울컥해서 그런지 괜시리 피곤했다. 창문에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으려는데 나를 계속 쳐다보고 있던 아이가 혼자서 말을한다.
 
난 엄마한테 혼나도 안우는데....
나도 엄마한테 혼나도 안울어
그럼 왜 울었어?
...그냥
그냥?

아이는 드디어 열린 내 말문이 반가운지 계속 물어본다

그냥 우는건 왜 우는거야?
꼬마야, 심심해?

아이는 자기 질문에 대답하지 않는 나를 잠시 쳐다보고, 옆 자리에 잠든 여자를 쳐다보더니 가만히 고개를 끄덕인다. 눈매는 시무룩해 보였고, 양쪽으로 묶은 머리는 고갯짓과 함께 흔들렸다. 내가 지금 너랑 이야기 할 기분은 아니란다 꼬먀야.  보다시피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은 심심하다고 아무 이야기나 하지 않거든. 그렇게 말해주고 싶었지만, 아이와 내가 서로 쳐다보는 그 시간에 기차가 선로를 달리는 소리 말고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아 그냥, 괜시리 그냥 뭔가 소리를 내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그냥 울었어. 그냥 조금 ...무서워서
무서워서?
응. 무서워서.
뭐가 무서웠는데?
글쎄..

그러게나 말이다. 뭐가 무서웠을까. 뭐가 두려워 나는 눈물 지었을까. 가슴 한 가운데 막혀있는 돌덩이 같은 감정은 굉장히 복합적이었지만, 지금 나를 울게 만든 감정은 분명 두려움이었다. 두려움. 지금 여기 있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 다가오지 않은 시간에 대한 두려움. 아무도 짐 지우지 않았지만 나 혼자 들쳐매고 있는 의무감이, 실수할까봐, 실수하면 실패할까봐, 그럼 뭔지 알 수 없지만 돌이킬 수 없을까봐 두려웠던 나의 마음이 묵직하게 내 가슴을 눌러, 나는 깊은 한숨을 몰아쉴 수 밖에 없었다.
흘려보내는 시간은, 놓쳐버린 기회는 더 이상 반복되지 않을꺼라는 생각이 더 빨리 뛰라고 나를 몰아세우고, 쫓기면서 뛰는 그 시간동안 초조함이 점점 두려움으로 바뀌면서, 언젠가부터 나는 두려움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대답없이 혼자 생각에 빠져있자 아이가 다시 질문을 바꿨다.

어른도 무서운게 있어?
.....어. 어른도 무서운게 있지 
치, 어른이 뭐 그래.
그러게.. 어른이 뭐 이런지 모르겠다.

나는 실망한 듯한 아이의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지금 내 모습이 그러니까. 지금까지 아등바등 용쓰면서 부정했던 사실인지도 모른다. 나는 두렵지 않고, 나는 스스로를 제어할 수 있으며, 나는 세상을 감당할 수 있다고 믿고 싶었던 내 욕심에 정면으로 반박했다. 나도 무서울 수 있다고. 나도 무서워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손을 덜덜 떨때가 있다고. 뭔가 해결책을 받고 싶어서, 문제를 없애고 편하게 살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냥 나도 그렇다고 말하고 싶었다고.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고 아이와 눈이 마주치자, 한숨같은 웃음이 나왔다.

...가끔은 어른들도 무서워하기도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