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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않는늑대/동양늑대

인공눈물 이야기 2


방은 고요하다. 간간히 뒤척이는 소리와 숨소리만 어둔 방 안에 살아 움직이는게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창 밖에 바람이 부는지 창틀이 간간히 덩컹거린다. 어둠과 고요가 한동안 계속되다가 새파란 불빛이 온 방을 채우면서 시끄러운 소리가 시작된다.

- EBS 라디오가 다섯시를 알립니다.

작고 네모난 창에서 나오는 불 빛 치고는 유난히 강렬한 푸르스름한 불빛에 여자는 잠에서 깬 듯 하다. 손을 내뻗어 머리 위를 더듬거리다 스위치를 켜면 푸른빛은 더 이상 강렬하지 않은 그저 그런 푸른빛이 되고 방은 낮과 같이 환해진다. 그러나 그녀는 아직도 한밤중이다. 내뻗은 팔을 걷어들여 눈을 가리고 있던 그녀는 크게 숨을 들이쉬고는 무겁게 몸을 일으킨다. 그리고 감은 눈으로, 온전히 습관적으로 기억하는 그 위치에서 나를 집어든다. 

건조한 눈 속으로 내 안의 투명한 액체가 들어가면 비로소 그녀는 눈을 뜨고 세상을 마주한다.

그녀는 한참을 부산스럽게 움직인다. 머리를 수건으로 감싸고 거울 앞에 앉아 한참동안 얼굴을 두드리더니 옷을 입고 가방을 주섬주섬 챙긴다. 이 방 저 방 움직이며 내 시야에서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하던 그녀는 한참동안 보이지 않았다. 오늘은 나를 안데리고 가네. 가끔 그녀는 나를 크고 컴컴한 가방에 넣고 나가고는 했지만 오늘은 나를 잊었나보다. 방은 다시 고요해졌다. 주위를 둘러봤지만 입을 여는 물건들은 없었다. 나는 다시 홀로 외로워졌지만 그래도 이정도는 버틸만 하다. 햇살이 방을 데우고 바람이 그 열기를 다시 식히면 그녀가 돌아올테니까. 메마른 그녀의 눈은 안쓰럽지만 내가 있어야 그녀의 아침이 온전하게 시작된다는 사실에 행복하다.

이른아침, 그녀에게 아침을 선사하는 것은 형광등과 시끄러운 라디오가 아니라 나. 인공눈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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