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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른표범/눈

(영화) 남과 여 _약스포


작년 언제쯤, 처음 이 영화의 포스터를 봤다.
개봉일은 16년 2월인데 내가 기억하는 그 날은 영화 개봉이 한참 남은 시기였고 날이 더웠던걸로 기억한다. 가을 초입. 아마 그쯤이었을 것 같다. 어쩌면 그쯤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 날 햇살이 뜨거웠고 조금 더웠다.

그 무렵의 나는 전도연을 좋아하지 않았다. 물론 싫어하지도 않았다. 연기를 잘한다하니 그런가보다, 그냥 그랬던것 같다. 공유 역시 '커피 프린스'와 '카누' 광고 이미지 그 이상은 별 감흥도 없었다. 뭐... 멋지긴 하지만 배우보단 모델같은 그런 느낌이었달까.


하지만 이 스틸컷을 보고나서는 영화가 보고 싶어졌다. 영화 내용은 알 수 없었지만, 장르도 알 수 없었지만 그냥 보고 싶었다. 전도연의 메마른 겨울같은 표정을 보고 핀란드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그 무렵부터 핀란드가 그리워졌다. 한번도 가본 적 없는 겨울의 나라.


시험 끝나고 '굿와이프'를 몰아봤다. 굿와이프를 보고나니 전도연이 연기 잘한다는게 이런거구나 싶었다. 과하지 않고 섬세하면서도 지루하지 않은 연기와 화면에서 모두와 잘 어우러지는 외모. 내용 전개와 별개로 눈길을 당기는 그런 매력을 느꼈다.

영화관에 가서 '부산행'도 봤다.
왠지 승자는 마동석 같았지만(응?) 공유를 배우로서 다시 보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 되게 막 미친연기, 이런 느낌은 아니었지만 잘생김과 연기력이 같이 잘 살아난 그런 느낌.

그리고 나서 동생의 영화폴더를 뒤지다가 '남과 여' 를 찾았다. 심심한데 한 번 볼까. 예전에 가졌던 핀란드에 대한 그리움은 온데간데 없었고 나는 그냥 무덤덤하게 영화를 재생시켰다.


설경과 오두막, 영화 속 핀란드는 아주 짧았다. 스틸컷을 보고 내가 기대하던 그런 겨울의 이미지는 핀란드에서 온게 아니라 전도연에게서 비롯된 것이라는걸 깨닫게 되었다. 겨울 햇살같은 느낌. 살얼음에 투영된 햇살같이 창백한듯 투명한듯 지친듯한 여인의 표정에서 나는 나의 지친 마음을 보았다.

그리고 자분자분 적셔오는 공유로부터 여주인공과 함께작은 온기를 느끼고 있었다. 불륜이라는 소재를 간과한것은 아니었고, 사실 그 소재를 맘에 안들어하는 사람 중 하나지만, 이 영화를 보는 동안은 그 생각을 못했던 것 같다.

엄마보다 여자로서 자신을 선택하는 그 순간도, 빈 방에서 혼자 공유를 기다리다 아침을 맞이한 순간도, 마지막 담배 피우는 그 순간 까지도 나는 전도연에 몰입했었다. 그래서 공유의 마지막 선택도 예측은 했었지만 막상 맞닥뜨렸을 때 "저ㄱ새끼가 진짜!!!" 하고 욕을 했던것이다.

공유의 마지막 눈빛은 마음 아프지만 불쌍하진 않았고 비겁한 놈 이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Nothing happened.
파울로 코엘료 "11분"에서의 한줄이 생각나면서 마음이 착잡해졌다. 분명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엔딩인데 입이 씁쓸한걸 지울 수 없었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나는 불륜남녀의 해피엔딩은 별로 안좋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피엔딩이 아님에 욕을 할정도로 몰입해서 본 멜로영화는 처음이었던 것 같다.

나는 전도연과 공유가 좋아졌다.

날이 추워지면 다시한번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