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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른표범/입

눈과 코와 귀와 촉각이 즐기는 맛



백화점에 가면 가장 둘러보기 즐거운 곳은
가방 매장도, 구두 매장도, 화장품 매장도 아닌 식품매장 입니다.
물론 공산품을 파는 마트를 말하는건 아니구요,

센텀시티 지하 식품코너 정도면 될까요?

그 곳은 맛있어 보이고 향기로워 보이는 음식들이 만들어지고 팔려나가는 곳 입니다.



저는 사실 단것도, 매운것도, 짠것도, 기름진것도 별로 안좋아하구요.
시큼털털하거나 약간 떫은, 쌉싸름한, 별 맛 없이 닝닝한 그런 맛을 좋아합니다.
예를 들면 길가에 매달린 버찌같은 맛이나, 엉덩이 한쪽만 발그래진 풋살구 같은 맛.
양념장이 덜 묻은 생 미나리같은 맛


그런 사람이 백화점의 시식코너를 유달리 좋아하는 이유는
그 곳에선 입을 제외한 모든 감각이 맛을 보는 것 같은 환상에 사로잡히기 때문입니다.

한 입 가득히 물면 온 입에서 뭉근하게 퍼질 것 같은 생크림이나
눈이 찡끗거릴 정도로 새콤할 듯 새빨간 체리무스
갓 구워낸 빵의 고소한 냄새와 반들거리는 표면
치직치직 소리를 내며 뒤집히는 통통한 소세지 같은 것들


사지도 않으면서 그 앞에서 지긋하게 음식을 바라보는건 왠지 궁상맞아 보일 수도 있지만,
정작 음식을 맛보는 입은 썩 내켜하지 않으니 어쩔 수 있나요.
아름다움은 그것을 즐기는 자에게나 유효하다고, 그 미학을 즐길 수 있는 눈과 코와 귀만 호강입니다.
실제로는 느끼지 않지만 다른 감각들 덕분에 마치 진짜라고 착각하는 촉각도 있네요.

눈과 코와 귀와 상상의 촉각이 빚어낸 맛은 
감각을 끌어모아 만들어낸 합작품이다 보니 실제보다 선연하고 강렬합니다. 
때문에, 실제 맛과 촉각은 상대적으로 더 실망스럽고 쉽게 질리게되죠. 


직접 먹지는 않지만 풍미를 즐기며 돌아다니는 시식코너.

좋은 버릇인가요, 나쁜 버릇인가요? 






누군가가 '먹는 습관은 삶에 대한 태도와 닮아있다'고 했습니다. 


직접 살아보지도 않고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상상한 세상과 진짜 세상.


상상속의 세상은 없는 것이니, 아무리 달콤하고 강렬하고 즐거워도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쉽게 질리고 실망스러워도 진짜 세상을 살아야 한다고.
실망스러워도 그 자체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나는 생각합니다.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맛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짧은 인생, 굳이 실망스러운 그 맛을 안고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시큼하고 쌉쌀하고 떫떠름하고 싱거운 맛은 직접 받아들이면서
좋아하지 않는 것들은 상상을 통해서 좋게만 보려는 어린아이 같은 괴벽이 좋은게 아님을 알면서도
좋아하는 것만 하면서 살수는 없는거냐고 나는 되묻습니다.



시식코너를 서성이면서 나는 당신에게 묻습니다.
 
좋은 버릇인가요, 나쁜 버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