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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않는늑대/동양늑대

꿈이야기] 20141115

 

지구 멸망의 순간이었다.

사람이 살 수 있는 대륙은 용암에 뒤덮힐 것이라는 사실을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

티비속에서 나오는 어느 나라의 평원이 시뻘건 용암으로 뒤덮힐 때 우리는 그것이 그 나라의 문제로만 끝날 줄 알았다. 그러나 대지는 뒤틀리고, 바다밑에 잠들었던 지표의 두꺼운 껍질은 열을 토해내며 위로 치솟았다. 하늘은 대낮이었지만 시뻘겋기만 했고 육지에 터전을 잡고 사는 동물들은 죽을 수 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미래가 없음을 알았다. 어떤 사람들은 바다로 나가고 싶어 했지만, 대다수의 인간이 바다위의 삶을 준비하기엔 너무나 짧은 시간안에 변화가 찾아왔다. 사흘, 일본이 용암에 잠식당하고 사흘만에 지구의 모든 육지가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도망치려고 했다. 내륙으로. 나라간의 국경을 신경쓰는 사람은 없었다. 어떻게든 아시아 대륙 한가운데로 가겠다고 사람들은 떠나고 있었다.

그 중에 우리 가족도 있었다. 아버지가 큰 트레일러를 구해왔다. 우리 가족을 태우고, 내륙에 다다를 때 까지 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인 물건들을 싣고 가기 위해 구해온 차였다. 물론 그 중간에 도로가 파괴되고 땅이 녹아 없어지면 쓸모 없겠지만, 그 떄가 되어 버리면 되는 것이다. 어차피 이 곳에 남아 있어도 죽는것은 시간 문제였으니까.

출발 하려고 할 떄 문득 아주 중요한 무언가를 집에 놓고 왔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놓고는 절대로 갈 수 없는 것이었다. 우리집은 아파트 18층인데 전기가 들어오지 않으니 그 곳 까지 걸어 올라가야 했다. 계단으로 18층 까지 올라가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는 이런 혼란한 상황에 마주치는 사람들이 어떻게 바뀌게 될 지 예상할 수 없다는 데 있었다. 죽음이 예견된 상황에서 사람들이 적대적으로 변할까봐, 도덕이나 윤리같은 개념은 고사하고 까닭도 없이 공격적으로 변할까봐 무서웠다. 그 떄 옆에서 동생이 내게 같이 가자고 했다. 여동생이었다. (나는 여동생이 없다)

우리는 아파트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집이있는 라인 (5호 6호 라인)은 뭔가 문제가 생겨서 옆 라인 (3호 4호) 라인으로 들어가서 중간에 집을 가로 질러야 한다고 했다. 중간에 집을 가로지른다는게 뭐지? 나는 당연히 옥상까지 올라가서 옥상을 통해 우리집 라인으로 들어갈 생각을 하고 있는데 동생이 11층에 있는 집을 가로지르면 라인을 바꿀 수 있다고 했다.

일단은 올라가야 했으므로 11층까지는 아무말 없이 올라갔다.

11층 4호 앞에서 동생이 내 팔을 잡아 끌었다.

"언니 여기, 이 집을 가로 질러야 해"

"집을 가로지른다는게 무슨말이야?"

"말 그대로 가로지른다고"

동생과 내가 대화를 하는 중간에 1104호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우리는 황급하게 열리는 문 에 숨었다. 현관문 아래 틈으로 신발이 보였다. 앞 코가 뾰족한 베이지색 구두. 그 여자는 잠시 멈춰서 있더니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계단으로 걸어 내려갔다. 여자의 구두소리가 안들리고 나와 동생은 그 집 안으로 들어갔다. 왠지 모르게 낯익은 집. 나는 무의식 적으로 거실을 가로질러 작은방으로 들어가면 통로로 쓸 수 있는 벽이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 때 왠 남자가 작은방에서 나와 안방으로 휙 들어갔다. 그 사람은 우리가 서 있는 것을 미처 보지 못한 것 같았다. 

나는 발소리를 죽여가며 거실을 가로질러 작은방을 향해 갔다. 아파트의 구조는 어차피 우리집과 같을테니 몸을 조금 더 기울여 벽에 붙이면 안방에서는 보이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알았다. 그런데 그 때였다.

내 여동생이 뭐하고 있는지 궁금하다며 안방에 머리를 쑥 들이밀었다.  

"누구야!!!!"

남자가 크게 소리를 지르자 나는 너무 놀래서 뛰어들듯이 작은방으로 들어갔고, 붙박이장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벽이 빙글, 하고 돌면서 다른 집으로 나를 옮겨 놓았다. 곧 뒤이어 내 동생도 벽을 넘어 들어왔는데, 그 표정은 그저 재미있다는 웃음만 띄고 있었다.

"왜 공연히 방을 들여다 봐가지고 그래!!!"

"궁금해서 그랬지"

별 일 아니라는 듯 웃으며 넘기는 동생의 표정에 나는 화가 났지만, 빨리 중요한 물건을 가지고 내려가야 한다는 것을 생각해내고는 일단 입을 닫았다. 11층 베란다를 통해 보이는 우리 아파트 앞 산 너머, 바다쪽 동네의 하늘은 이미 붉었다. 아마 곧 이곳의 땅도 녹아 없어질 것이 분명했다.

그 집을 나와 다시 18층 까지 올라갔다. 뭐였는지 기억나지 않는 그 중요한 물건을 품안에 챙겨놓고 아빠와 우리가 타고 갈 트레일러를 내려다보는 그 때,

탕!! 탕!!!

아까 우리 때문에 놀랐던 그 남자가 총을 들고 1층으로 뛰어내려와 트레일러 운전석에 타고있던 아빠를 총으로 쐈다.

 

나는 순간 당황해서고개를 돌렸다가 아래를 내려다 봤다. 트레일러 운전석의 문이 열려있고, 아빠의 한쪽 팔이 그 밖으로 힘없이 떨구어져 있었다.

 

"아..안돼.."

 

그 짧은 찰나, 아빠가 총에 맞았다는 당혹감과 동시에 아까 우리가 그 남자를 놀라게 하지 않았더라면, 아빠는 총에 맞지 않았을텐데,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저 차는 내가 운전해가야 하나? 용암에 녹아 울렁거리는 길 위로 저 큰차를 운전해 갈 수 있을까? 하는데 까지 생각이 드니 절망이 엄습해 왔다.  

그 때 문득, 내 동생은 여동생이 아닌데, 이 아이는 누구인가, 하는 생각에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아래를 내려다 보며 웃고있는 낯선 여자아이의 옆모습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