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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않는늑대/동양늑대

꿈 이야기] 20140819

좀 전에 꿈을 꿨어. 그리고 울면서 깨어났어

우리나라에 엄청난 태풍이 와서 온나라가 정전이 되고 난리도 아니었어. 비가 와서 서울 낮은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떠내려가고 실종되고... 대피소에 피해던 나는 화장실을 가려고 그 앞에 줄 서 있는데 거기도 마찬가지로 엄청 시끄럽고 더럽고 상하수도 시설이 고장나서 물이야 당연히 안내려가고, 그때 나는 줄 서 있다가 "아, 북한 화장실도 이거보단 깨끗하겠다" 라고 한마디 했지, 짜증섞인 목소리로.

그리고 이틀이 지난 일요일 새벽.
검은 옷을 입은 왠 무리의 사람들이 피난처에 내려왔어. 모여있는 우리들 중 스무명 정도를 골라내는거야. 근데 그중에 나도 포함되어 있었어. 그 사람들은 위압적인 표정으로 우리를 쳐다보면서 앞에 나열된 물병을 하나씩 고르래, 그리고 그 안에 물이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 옆으로 서래. 스무명의 사람들은 물병을 골랐고, 내가 고른 물병은 물이 들어있었어.

그 사람들 옆으로 가서 섰어. 그랬더니 한 무더기의 파일 중 한장의 종이를 꺼내는거야. 거기엔 "일제시대 잔재를 일상속에서 사용함, 친일. 프로그램 개발정보에 관심이 많고 새로운 주식거래 프로그램을 사용함, 해킹. 북한의 화장실이 남한보다 낫다고 소리침, 남파 간첩. 최종판결- 사형" 이라는 글이 써있었어.

"이게 뭐예요? " 내가 물었더니 "보시다시피 사형자 명단이요. 물이 있는 물병을 골랐으니 명단자 중 선택된겁니다." 라는거야, 검은 옷을 입은 여자가.

"예?"
이게 무슨 날벼락이야. 믿기지도 않아서 멀거니 쳐다보고 있었더니 그 옆에있던 남자가 '선택자' 들을 한줄로 세우면서 이렇게 말 하는거야. " 지금 한국의 전체 통신망이 먹통이 되고 난리도 아닌게, 다 당신들, 남파 간첩들 때문이지. 당신들 사형시키고 빨리 업무 정상화 시켜야하니까 한줄로 서. 가나다 순으로 형 집행할꺼야"

무슨 말이야, 통신망이고 도시 전체가 난리난건 태풍때문이지. 전에 없던 큰 태풍이 우리나라를 세로로 가로질러 간다고 보도도 엄청했고, 지금까지 밖에 버젓이 태풍이 지나가고 있는데 간첩이 뭐라고?? 태풍 온다고 있는데도 오다가 소멸 될 것 같았다는 이유로 아무 대책 없었던 관리담당자들 때문에 일이 이지경 된거 아냐??

나는 이해도 안가고 너무 억울했어. 심지어 죄목이 친일, 해킹, 남파간첩 이라니. 그 때 우리 가족이랑 모여있던 친척들이랑 아는 몇몇 지인들이 내 쪽으로 왔어. 아는 얼굴이 보이자 일단 정신이 돌아와서 나는 우리 문서를 들고있던 여자에게 가서 물었어. " 친일이라뇨? 다른 두개도 이해가 안가지만 이건 짐작조차 안가는데요?" 그 여자가 내 얼굴을 쳐다보고 뒤에 둘러선 사람들을 보더니 뒤적뒤적 다시 종이 파일을 뒤졌어. 그리고 꾸깃꾸깃한 바랜 종이를 꺼내더니 말하는거야. " 고등학교 다닐때 12-1 27-3 이 버스들 타고 다녔죠? 여기 이 '다시' 는 일제치하의 잔재예요. 이걸 사용하면서 아무 자각이 없었나보죠? "

" 아니, 그건 그 버스 번호가..."
"됐어요, 오늘 일요일이라 항의 하셔봐야 의견접수 안돼요. 그런식으로 하면 죄인 아닌 사람이 어딨겠어요? 안타깝지만 물병을 잘못뽑은 본인의 운이라 생각하고 저기 가서 줄 서세요. "

저기 가서 줄 서면 죽는데? 지금 나보고 죽으라고? 나는 너무 억울해서 주변을 둘러봤는데 사람들 모두 기가 찬다는표정이었지만 따지는 사람 하나 없었어. 줄 서있는 사람도 억울해요, 라고 중얼거리기만 했지 따지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거야. 검은 옷 입은 사람 중 하나가 내 팔을 끌어서 나를 선택자의 대열에 세웠어.

첫번째 사람의 사형 집행이 시작됐어. 총도 아니고 칼로 죽인대. 칼로 사람이 단번에 죽어? 마지막으로 남길 말을 하고나니 옆에 한문이 잔뜩 쓰인 제단같은데 절을 두 번 하라는거야. 사형수가 울면서 물어봤어. "이게 뭔가요?"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대답했어 " 곧 죽을껀데 알 필요 없잖아." 사형수는 쭈뼛쭈뼛 하더니 눈치를 보고는 두 번 절을 했고 서류를 들고있던 여자가 그 모습을 카메라로 찍기 시작했어. 첫번째 선택자가 절을 마치고 일어서자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 중 덩치 큰 사람이 그를 앉히더니 어디서 큰 칼을 들고와서 목 뒤를 내리쳤어. 억, 소리와 함께 그 사람은 쓰러졌고 잠시 후 한명이 나가 맥을 짚어보더니 고개를 끄덕였어. 검은 옷의 사람들이 그를 질질끌고 나갔어.

저게 무슨 칼로 죽이는거야, 그냥 때려 죽이는거잖아. 난 너무 어이가 없고 놀라서 미칠것 같은거야, 고개를 돌려 옆을보니 다들 두려운 눈빛으로 아무말도 않고 웅크려 있어서 나도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삼킬 수 밖에 없었어.

그렇게 두번째 사람이 나가고 유언을 하고 이상한 단상에 절을하고 사진을 찍히고 칼이라기 보단 몽둥이에 가까운 도구에 맞고 끌려나갔어. 나는 일곱번째 였는데 다섯번째 사람이 한번에 숨이 멎지 않아서 수차례 칼에 맞았어. 피가 터지고도 숨이 멎지않자 검은 옷의 사람들이 동요하더라고 그리고는 덩치 큰 사람과 몇명의 사람들이 그를 둘러메고 밖으로 나가서 한참을 들어오지 않았어.

나는 살고싶었어.
친일이라니 남파간첩이라니. 나는 일본도 싫어하고 북한도 싫어하는데, 버스 번호하고 화장실 위생상태에 불만 품은게 내가 친일이었고 간첩이라는 증거가 될리 없다, 이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된다, 생각해서 어디엔가 도움을 요청하려고 폰을 켰는데, 아, 전국이 정전된 이 판국에 폰 배터리가 남아있을리 만무하고, 통신망도 엉망이라 인터넷도 전화도 안되는 상태였던 거야.

사람들이 모르는 사이에 이렇게 그냥 억울하게 죽으라고? 주변에 서있는 사람들을 울먹이면서 쳐다봤어. 사람들은 이거 불법아냐? 제대로 되는거 맞아? 어느 기관에서 내려운거야? 하면서 수근거리긴 했지만 아무도 나서서 말하지 않았어, 다섯명이 죽어 나갈때 까지.

다섯번째 사람을 메고 나갔던 사람들이 들어오자, 아까 우리를 줄세운 남자가 "그래도 밥은 먹고 해야지" 하면서 사형을 잠시 중단 시켰어. 내 앞 여섯번째 사람과 내 뒤 세 사람은 그냥 멀거니 서서 죽을 시간만 기다려야 하나, 했는데 울엄마가 그 사람한테 가더니 마지막으로 밥이라도 먹이겠다고 날 데려가겠대. 그 사람이 나랑 엄마를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어.
그래서 나는 줄에서 빠져나와 엄마와 함께 보호소의 한쪽 귀퉁이로 갔어.

보호소에 먹을것이라곤 라면이 전부라 엄마는 말 없이 라면을 하나 뜯고, 스프를 넣고, 아껴둔 생수병을 뜯어서 가스버너에 물을 올렸어. " 그래도 한국 사람은 따뜻한 국물있는걸 먹어야 한다" 며 물 끓기를 기다리는 엄마는 울고있었고 나도 울었어.

도망갈까, 보호소 밖엔 아직 태풍이 거세서 물에 발만 닿으면 다 휩쓸려갈 지경이라 어차피 나가도 죽을 상황이니까, 그럼 뭐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 영화같은데 보면 사형 직전에 취소 되기도 하고, 근데 마가면 바로 죽으니까 도망가는건 별로 도움이 안될꺼야. 엄마와 물 끓는걸 보며 중얼중얼 이야기 하는데 우리를 본 사람들이 우리 주변으로 모이기 시작했어.

어차피 내가 도망가도 아까 그 남자가 엄마 얼굴을 봐서, 엄마를 해코지하면 어떡해. 도망은 힘들겠다, 하고 생각히는 동안 엄마는 묵묵히 라면을 끓이시고 사람들은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어.
" 아니 이게 무슨일이야"
" 저 사람들 정부에서 나온거 맞아?"
" 아니 이 비를 뚫고 어디서 나타난거야? "
" 그래도 오는 길은 있겠지, 구호품도 오잖아"
" 저게 말이 돼? 사람이 죽어나가는데 여기있는 사람들 말고는 아무도 모르는게?"
" 밖에선 태풍때문에 숱하게 죽어 나가는데 뭘."
" 혹시 저 사람들 맘이 바뀌면 살 수도 있나?"
" 그러게, 물병 잘못뽑았다고 뭐 바꿔치기라도 해줄라나?"
" 그냥 해주겠어, 그걸?"
" 아이고 지현이 엄마는 이제 어쩌나?"
" 어쩌긴 뭘 어째, 저거 죽고나면 나도 따라 죽을꺼야."

엄마가 라면을 내 앞에 내려 놓으면서 말을 툭 내뱉으셨고 나는 목이 메이고 가슴이 답답해서 라면을 씹어 삼킬수가 없었어.

다들 이 상황이 말도 안된다고 생각은 하지만 아무도 이상하다 말하지 않는 그런 상황. 나 죽으면 따라 죽겠다고 말하는 엄마도 죽을 생각은 해도 이 상황을 따질 생각은 않는 그런 상황. 나 조차도 죽음을 눈 앞에 두고도, 이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 생각하면서도 막연히 난 모면할지도 몰라, 기대하고, 다들 아무 말 없으니 괜히 말 꺼냈다가 먼저 죽을까봐 아무말 않고 눈치만 보는 그런 상황.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밥을 다 먹었는지 내 쪽을 쳐다보며 수근거리기 시작하고, 나도 목이 메여 더 이상 라면을 삼킬 수 없을 때 아까 그 머리긴 여자가 다가왔어.
"다 드셨으면 가죠."

사형이 취소되거나, 집행관의 자비로 내가 면제되거나 하는 일은 없었고 나는 좌절했지. 이렇게 죽는구나. 나는 살고 싶은데. 나는 살고 싶다고.

여섯번째 사람은 단박에 숨이 끊겨 끌려 나가고, 결국 내 차례가 왔어. 근데 나갔던 사람들이 한참을 안내려 오더니 낯선 사람들 한무리가 보호소로 내려왔어. 그 사람들은 나를 포함해 남은 네명을 쳐다보고는 바로 우리쪽으로 왔고, 그 중 한명이 그 여자쪽으로 다가가서 말을 걸었어.
" 어디서 나온 분들입니까?"
"... 말씀 드리기 곤란한데요."
" 사람을 죽이고 있으면서 어디서 왔는지 말도 못해준다구요? 어디서 왔어요. 문서 승인받은거나 관련문건 내놔 보세요."
" 누군데 이래요?"
" 나 변호사고 저기 있는 사람들 다 이쪽으로 잘 아는 사람들이니까 딴소리 하지말고 공문서 보여줘요."

아, 살았다. 나는 주저앉아 울고 싶었어.
새벽에 빈 물병을 뽑은 사람중에 이건 너무 이상하다고 생각해서 보호소 밖으로 나가 도움을 요청 한 사람이 있었던거야. 남은 '선택자' 네 명을 챙기던 한 아저씨가 태풍때문에 좀 늦어졌다고, 멀리서 한두명씩 오고 있으니 일단 좀 버텨보자고 말 했어.

검은 옷을 입은 여자는 잠시 우리를 쳐다보더니 들고있던 서류 뭉치에서 어떤 종이를 꺼내더니 자기에게 말 하고 있단 변호사에게 보여줬어.

" 이런 단체가 있어요? 여기 사법권도 없는 개인단체 아닙니까?"

변호사의 말에 사람들이 술렁거리자 검은 옷의 한 남자가 앞에 나서더니 " 비밀단체요, 당신이 알아야 뭘 알아? 높은 정치인들이 다 승인한 절차라고. 우리는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들이라 따져봐야 소용 없어." 라고 했어.

변호사가 계속 언쟁을 하는 동안 우리쪽에 있던 한 아주머니까 내게 물었어. " 대체 죄목이 뭐래요? " 나는 비로소 말 할 용기를 얻고 말을 시작했어.

" 친일에 전산망 해킹에 남파간첩이래요. 버스는 십년도 더 전에 그냥 그렇게 번호 붙어있는 버스를 그렇게 부른 것 뿐이었어요. 그게 친일이면 버스 번호를 그렇게 붙인게 잘못 아녜요? 해킹은 새로운 프로그램을 썼다고 그런건데 주식때문에 새로운 프로그램 다운 받은것 뿐이예요. 그 은행이랑 거래하는 사람들 중에 컴퓨터로 주식거래 하는 사람들은 다 쓰는 프로그램이에요. 화장실은..너무 더럽고 열악해서 비유한다고 한마디 한건데.."

말 하면서 안도감과 분노가 뒤섞여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눈물이 쏟아졌어. 아주머니가 등을 토닥이면서 저 사람들에게 따지자고, 같이 가자고 내 손을 끌어줬어.

진정이 좀 되고 변호사와 싸우고 있는 그 여자 앞으로 가 말을 하려고 있는데, 그 여자가 그러는거야.
" 지금 이러셔도 저희는 바뀌는게 없어요. 아까 말씀 드렸듯이 오늘 일요일이라 위원님들 회의가 열리지 않아요. "

지금 사람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데, 난 방금 죽을뻔 했다가 살아났는데, 내가 살 수 있는 방법이 단지 오늘이 일요일이고, 그래서 그 고위 공무원들이 일을 안하기 때문에 받아들여질 수 없다고??

너무 화가났어. 그래 어차피 잘 안되면 죽기밖에 더하랴, 가만히 있어도 죽을 것 아닌가.

반나절이지만 지금까지 내가 살아왔던 모습, 부당하다고 느끼면서도 따지지 않고,
혼자 웅얼거리기만 할 뿐 뭔가 행동하지 않고,
혹시나 어쩌면 기적같은 일이 일어나 주지 않을까, 저 사람들이 호의를 베풀지 않을까, 나는 피해가지 않을까, 이런 안일한 기대만 하면서 물이 끓을 때 까지 냄비속에 잠자코 앉아있던 개구리 같은 내 모습이 후회되면서 동시에 격한 분노가 치밀어 올랐지.

" 그렇게 따지면 당신들은 공무원 아니네?
그런 식이면 형집행은 일요일인데 왜 하는거죠? 대한민국에 세금 낸 국민으로서 일요일에 내 권리가 보장 안된다면, 당신들 권한도 쉬는날이니 일요일은 당신들이 말하는 업무집행도 거부하겠어요. "

너무 화가나서 부들부들 떨면서 울면서 말했어. 그리고 울면서 꿈에서 깼어. 꿈에서 깨서도 잠시동안 부들부들 떨면서 울었어.

다행이다.
죽지않고 깨어나서 다행이고,
깨닫고 깨어나서 다행이다.

꿈에서 깨어난 시간 새벽 3시 21분.
가장 서늘한 시간 3시와 4시 사이엔 내 것이면서도 내 것이 아닌 꿈을 꾼다.
지금 우리나라에 가득찬 기운이, 은둔한채 내 급한 발등을 끄고있는 나의 새벽으로 흘러 들어왔나보다.

꿈을 쓰고나니 어느덧 아침이다.
일어나자, 세시간밖에 못자서 고단한 하루가 되겠지만 내 마음은 어느때 보다 이글거리고 있으니 그 에너지로 하루를 버티자.

 

20140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