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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한고양이

[고양이네] 뿌리없는 시간






어딘가로 떠나거나
혹은 어딘가에서 막 도착하거나


28년 내 삶중에
머물러 있던 시간이 떠돌아다니는 시간보다 많았으나
희안하게
뿌리없이 떠도는 시간에서 마음의 고향을 발견하고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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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로 떠나기 전날
혹은 어딘가에서 막 도착한 날
거처를 옮기고 잡다한 볼일을 보고 다시 거처로 돌아오는 시간은
느즈막한 오후이기 일수.

그 시간의 햇살은
노랗고 따뜻하고 도톰해서
마음이 뽀송뽀송해진다.

그래서 내 마음은
머무름의 마지막, 혹은 머무름이 시작되기 전의 소속없는 시간에
정을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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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을 뒤집어 놓았다.
간단하게 책상과 구조를 바꾸려고 시작했는데
책도, 노트도, 그 외 잡다한 짐도 많은 내 살림 덕분에
내 방은 마치 이사 도중에 멈춰놓은 듯한 행태가 되었다. 
 
일요일 오후
방 안 깊숙히 햇살이 들어오고
방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여진 컴퓨터 책상을 비추었다.

방은 오후 네시쯤 된 것 같이 도톰한 빛으로 가득찼고
창으로 스미듯 들어오는 바람은 차고 투명하고 얇다. 살얼음처럼.
그래서 난 그냥 정리를 멈추고 앉아버렸다.

노란 방 안에 홀로 앉아 햇살에 몇시간 홀려 있으면,
저녁즈음에는 정신을 차리고 흘려버린 시간을 후회할지도-
아마, 홀로 보낸 시간을조금 외로워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알면서도 멍하니 햇살에 취해있는다.




햇살에 취하는건 마치 사랑에 취하는 것과 같다는 생각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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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방이 항상 돼지우리 같은 이유는
나는 이렇게,
막 이사온 듯한, 혹은 한창 이삿짐을 싸는 듯한
그런 느낌속에 사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는 효율적인 인간은 아니다.



....혹은 그냥 게으르거나. -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