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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않는늑대/동양늑대

감기가 오는 길 길을 걷고있다. 오늘은 일기예보를 좀 믿어봤는데 아니나 다를까, 영 맞는 것 같지 않다. 그지똥개들, 어제와 비슷한 포근한 날씨라며. 일기예보를 믿었던 나는 니트만 두 겹 걸쳐입고 나와서 바람 앞에 속수무책이다. 찬바람 때문인가 콧날이 쨍하다. 성긴 털실 사이로 서늘한 바람이 술술 들어온다. 나는 버스를 타러 열심히 걸어가면서 옷을 여미고 팔짱도 껴봤지만 별로 도움이 되는 것 같지 않다. 조금 빨리 걸어볼까. 몸에 열이나면 괜찮을지 몰라. 걷는 보폭을 넓히고 속도를 올린다. 스판이 섞여있어 몸과 같이 움직이는 바지는 편한듯 불편한듯 애매한 느낌이다. 깊은 목구멍 인쪽이 간질거린 것 같다. 큼큼. 헛기침을 하면 간지러운 느낌이 살짝 사라졌다가 다시 생겨난다. 열심히 걸었더니 정강이가 땡긴다. 희안하지, 왜.. 더보기
치자꽃 눈을 감아 세상이 까매도 향이 머물렀던 자리는 아슴푸레 빛이 난다 한번 일렁이고 나면 그뿐이지만 갖지못해 더 아름다운 향기- 어느 낮은 나무 하나가 저물어가는 농익은 꽃이 달콤함으로 내 마음의 조각을 가져갔다. 20080616 더보기
걸어라 이런 고통도 견뎌내지 못하면서 너는 무엇을 그리 하려했느냐. 걸어라. 여기서 주저앉으면 여태 올라온 그 모든 것이 사라지는 것이다. 끝까지 다다르지 못하면 여태까지의 수고를 쳐주지 않는다. 네가 시작을 했으니, 맺는 것도 네 의무가 아니겠느냐. 시작과 동시에 네게 주어지는 것은 권리가 아니라 의무인 것이다. 앞서 걸어라. 저 끝이 마지막이다. 네가 앞서 걸어, 무엇이 있는 지 확인해라. ..보이느냐. 이러한 풍경은 고통을 이겨내지 못하고는 얻을 수 없는 것이다 20090330 2009년의 내가 2014년의 나에게 하는 말인가 ㅋ 더보기
개화 나무 위 한가득 달빛이 영글려있다. 세상이 숨 죽이고 내 숨마저 잦아들면 툭 소리가 들릴까. 꽃망울이 터지면. 한껏 부풀은 눈물이 후둑 떨어질 때 만큼 가슴 철렁하진 않을까. 그 소리를 들으면. 20090402 더보기
풀내음 퇴근길, 차에서 내렸더니 짙은 풀비린내가 코를 찌른다. 어둑어둑한 길 위에 시들어진 풀들이 수북이 쌓여있다. 아직 풀을 깎을 시기는 아닌데. 잰걸음으로 집을 향해 걸었다. 속이 울렁인다. 난 풀을 깎고나면 진동하는 냄새가 싫다. 허리잘린 풀들이 토해놓은 질척한 피비린내 같아서 이 냄새를 맡으면 속이 메스껍다. 한치 앞 밖에 보이지 않는 어둔 길 위로 어둠보다 더 짙은 녹색 피가 흐르고, 소리없는 비명이 코를 넘어 폐 속 깊은곳 까지 파고드는 것 같아 단숨에 5층 계단을 올랐다. 문을 닫고 무거운 숨을 내쉬었다. 바다에서 거센 바람이 불어와 풀들의 울음같은 내음을 산으로 돌려 보냈으면 좋겠다. 20110413 Facebook 퇴근길, 사택의 풀들을 온통 깎아놨던 날의 끄적임 더보기
꿈 이야기] 20110414 _ 꿈 속의 너는 꿈을 꾸었네/ 그대 뒷모습 불러 세우는 꿈/ 팔 뻗으면 닿을곳에 그대가 있었네/ 숨을 멈췄네/그대 나를 스쳐 지나기에/ 짧은 시간이 영원같게만 느껴졌었지/ 나도 몰래 터져나온 내 목소리/ 손을 뻗어 잡고싶던 네 옷자락/ 꼭 감은 눈에 너의 표정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든 잡고싶던 네 발걸음/... 빈 방 처럼 텅 빈 머리 미칠듯한 심장/ 바보같아 내가/ 원망스러 내가/ 그대 발길 잡아두고 달아나려하네/ 말 없이 건네온 굳은 그대의 손/ 단단한 손길이 내 걸음을 세우고/ 눈물에 가려 보이지않던 네 표정/ 따뜻한 체온이 내 마음을 잡아매 / 손을 뻗어 잡고싶던 네 손끝도/ 살포시 속삭이고픈 네 귓가도/ 꼭 감은 눈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어떻게든 잡고싶던 네 발걸음/ 빈 방 처럼 텅 빈 머리 터질듯한 심장.. 더보기
[시] 스며드는 것 / 안도현 꽃게가 간장 속에 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 등판에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 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 꿈틀거리다가 더 낮게 더 바닥 쪽으로 웅크렸으리라 버둥거렸으리라 버둥거리다가 어찌할 수 없어서 살 속에 스며드는 것을 한때의 어스름을 꽃게는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 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 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 오늘 이 시를 처음 봤는데, 슬프다. 또 보면서 또 울었어 ㅠ 그 팍팍하던 고등학생때도 문학작품은 나름 마음으로 읽었는데, 나이 들어서 문학작품을 마주하니 이게 더 가슴에 확 꽂혀. 고등학교때랑은 정말 다른 것 같아. 국어수업 초반에 박목월 시인의 "하관"을 하는데, 울뻔했네 ㅋ 시가 왜이리 슬프니 ㅠ 가슴으로 읽을 시간 없이 머리로만 외워야 했던 그 시.. 더보기
꿈 이야기] 20141130 _ 골목길 저편에는... 골목길이었다. 그 길은 나 한명 지나가면 옆으로 한명도 지나가지 못할 것 같은 좁은 골목길이었다. 차 한대 지나갈 수 없을 것 같은 그런 좁은 골목길의 양 옆엔 연한 살색과 희끄무레한 색들의 천으로 만들어진 장막이 쳐져 있어, 좁은 길은 밝긴 했지만 흐리멍텅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 길 끝까지 잰걸음으로 걸어갔던 나는 길의 끝에서 나를 반기는 많은 동물들을 보았다. 커다란 개도 있었고 털이 더러워진 고양이들도 있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야생동물들도 한데 어울려 나를 보며 반갑다고 앞발을 들고 소리를 냈다. 나는 동물들을 향해 손을 뻗다가 말고 그들이 가두어져 있는 나무 울타리 옆의 더 작은 샛길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걸어 들어갈수록 길은 좁아졌고 길은 점점 오른쪽으로 굽었다. 나는.. 더보기
[시] 절벽 / 이상 절벽 꽃이보이지않는다. 꽃이향기롭다. 향기가만개한다. 나는거기묘혈(墓穴)을판다. 묘혈도보이지않는다. 보이지않는묘혈속에나는들어앉는다. 나는눕는다. 또꽃이향기롭다. 꽃은보이지않는다. 향기가만개한다. 나는잊어버리고재처거기묘혈을판다. 묘혈은보이지않는다. 보이지않는묘혈로나는꽃을깜빡잊어버리고들어간다. 나는정말눕는다. 아아, 꽃이또향기롭다. 보이지않는꽃이 --- 보이지도않는꽃이. =============================================================================== 회사 다니는동안 한번 잡지 않았던 이상 시집을 꺼내 들었다. 의도치 않게 문학작품을 많이 접했더니 왕년의 감성(?) 이 살아나는구만 ㅇㅅㅇ 아아, 나는 문학소녀가 아니지마는 나의 감성은 아직도 문학소..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