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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른표범/눈

[영화] 불한당 _ 이런게 누와르라면 애정하는 장르에 누와르를 넣겠어요

영화를 봤다. 

 

동생은 돈을 내고 다운받는 '굿 다운로더'

동생이 다운받으면 받는김에 나도 동생 컴으로 가끔 영화를 봅니다.

주말엔 동생이 아빠따라 해삼 건지러(응?)가서 컴퓨터에서 아무 영화나 골라서 봤는데

 

그렇게 보게 된 영화가 <불한당> 되시겠습니다.

 

영화에 대한 사전 정보가 하나도 없었어. 

주연이 누구인지, 칸에 갔었는지도 영화 보고나서 찾아보고야 알았고,

장르가 누와르인줄 알았으면 아마 안봤을거야.

첫 장면에서 누가 총 맞고 죽었을 때, 볼까말까 잠시 고민 했지만

이미 시작한거 그냥 보자, 하고 와인에이드 만들어와서 자리잡고 영화를 시작했어요.

깡패영화 뭐 있겠어? 하고 에이드나 홀짝이면서 가볍게 볼 마음이었는데

영화 끝날 때 까지 에이드 반도 못마셨어.

 

그리고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

'신세계'와 더불어 뇌리 깊숙히 박힌 누와르 영화가 하나 더 생겨버렸지.

그리고 그 자리에서 다시 한번 더 봤어.

그리고 그 다음날 한번 더 봤어.

 

 

[스포 있습니다]

 

줄거리나 내용은 영화를 보시거나

안볼거면 네이버에 검색하면 나오니까 그거 보시고 (언제나 불친절한 후기)

 

세 번 보고나서, 영화의 무엇이 그렇게 내 뇌리에 박혔나, 생각을 해봤어

 

첫째는, 영상.

의상도 그렇고, 전체적인 색이 굉장히 트렌디 하면서도 날티나지 않고,

색이 참 많아.

신세계는 무채색이 주를 이뤘던거에 비해, 불한당은 다양한 들이 많이 쓰인 것 같아.

설경구 과거의 공간은 노란배경,

교도소의 색감도 노란, 베이지 색 계열

현수와 재호의 의상은 푸른 계열의 수트

붉은 벤치와 붉은 피

더 감각적이면서 감성적으로 영화를 볼 수 있게 해주는 장치같달까?

 

 

 

둘째는, 배우.

임시완은 '미생'부터 이미 호감이었고, '원라인'도 잘 봤는데

'불한당'에서의 임시완이 제일 매력적이라고 생각함.

'원라인'의 '민'와 '불한당'의 '현수'는 둘 다 똑똑하고,

나쁜 놈과 착한 놈 사이, 덜 나쁜놈 포지션인데

사실 '불한당'의 현수는 경찰이지만, 하는걸 봐선 연기가 전부가 아니었을거야.

실제로 나쁜놈/또라이 기질이 있지 않았을까?

어쩌면 똑똑해서 금방 배워버린 것 일 수 도 있지만,

본성이 천사는 아니었다고 생각해.

선과 악 사이, 선도 악도 '아직은' 아닌 중간의 존재.

 

설경구는 섹시해. (응? 결론부터?)

그 연배 배우들라인 중, 어린 관객들이 보기에도 멜로가 어울릴것 같은 몇 안되는 배우라고 생각하거든.

'불한당'의 '한재호'는 웃고 있어서 더 또라이/잔인한 놈/자신 만만한 놈 같은 이미지지만,

사실 나는 웃는 한재호의 ''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어.

속을 알 수 없을 것 같으면서도 짙은 외로움이 느껴지는 시선,

웃고 있는데, 보는 내가 울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그런 시선.

 

분명, '공공의 적' 이후에도 많은 영화를 봤고, '감시자들'도 되게 잘 본 영화중 하나인데,

설경구 하면 '강철중'만 생각났거든?

이제는 한재호도 같이 생각 날 것 같아.

 

설경구의 한재호가 약했다고 평한 글을 봤는데,

난 설경구가 딱 적합한 것 같아.

메마른 눈빛을 보이면서도 동시에

시선은 차갑지 않은 사람.

설경구의 한재호는

어쩌면 본성이 나쁜 놈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하고 믿음의 여지를 갖게 만들어서.

 

+덤)

'공공의 적' 강철중 대사는 아직도 내가 좋아하는 대사 중 하나.

"그러지 마라, 형이 나쁜짓 한다고 패고, 말 안들어서 패고, 어떤 새끼는 생긴게 맘에 안들어, 그래서 패고... 그렇게 형한테 맞은 놈들이 일렬종대 앉아번호로 연병장 열 두바퀴야"

기억나는대로 써서 틀릴 수도 있지만, 대충 이러합니다ㅋ

 

 

셋째, 영화 구성

그저 배우가 좋아서 영화를 좋다고 평하진 않아.

그랬으면 정우성, 조진웅 나오는 영화는 다 명작이라고 했겠지만

아닌건 아닌거거든 ㅋ

'타이밍 적절한 플래쉬 백'이라는 평을 봤는데 정말 공감. 완전 공감.

시간이 과거와 현재를 왔다갔다 하는게, 스토리상 인과관계에 따라 왔다갔다 해서

관객들이 머리 굴리면서 이게 언제더라, 생각할 필요가 별로 없었지.

대신 그 에너지로 주인공들의 감정선에 더 집중할 수 있었어.

 

내가 이정도면 액션도 딱 좋아, 충분하다 ㅇㅅㅇ 라고 느꼈으니까 

정통 누와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었으면 아마 액션은 좀 약하다고 느꼈을듯.

(나는 액션이 너무 길면 지루하더라고, 취향 차이지만ㅋ)

 

 

넷째, 감정선

그렇지, 이게 가장 크지.

내가 본 신세계는 이정재의 감정선이 영화 전반을 굵게 한 획으로 가로지르고,

최민식, 황정민, 박성웅 배우들의 감정선이 얽혀들어가는 영화거든.

썰고, 썰리고, 피가 튀고, 죽이고, 패고, 부수고, 온갖 난리가 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영화를 주기적으로 보는 이유는, 감정선 때문이야.

 

불한당에도 감정선이 있지, 일방적인 방향으로 흐르는 애정.

 

영화에 대한 아무 사전 지식이 없었기 때문에, 영화 다 보고나서

엄청 혼란스러웠습니다 ㅇㅅㅇ 네 그래요 

이게 지금... 동성애 코드가 보이는게 기분탓인가? 나만 썩은거야? ㅇㅁㅇ!!!!!!

 

젊은 날의 한재호가 갖지 못한것에 대한 동경 (임시완의 시선은 항상 곧고 맑게 나옴) 

어린 동생에 대한 형/아버지 로서의 애정 (한재호에게는 없었던 가족에 대한 애정)

이런 생활에 지친 한재호에 대한 '선'의 구원 (교도소의 지저스로 한재호가 표현됨)

 

온갖게 동시에 생각났는데,

재호의 동료이자 친구(이자 재호를 좋아하는게 분명해보이는) 병갑이가,

현수를 없애라 할 때 재호가 떠올리는 현수의 모습이,

남 죽이는데 눈도 깜짝 안하는, 죄책감이라고는 없어보인다는 한재호가

한통속 아닌 척 위장 하려고 현수한테 총 쏠 때, 안절부절 못하는 그 모습

또 일일히 설명하려면 너무 많은 한재호의 시선들이

현수와 함께할 때만 보이는 웃음의 색깔

빼박 연정을 드러내서

 

혼란했다고 ㅇㅅㅇ 혼란했어

 

영화 두번째 보고, 나만 쓰레기인게 아니라 분명 감독이 의도한 뭔가가 있다.

라는 믿음을 갖고 감독 인터뷰를 찾아 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내 생각이 맞았어.

 

아무런 사전정보 없이 백지상태로 영화를 본 나같은 사람에게

별다른 스킨쉽도 없이 (뚜까 패는 스킨쉽 말고)

영화를 '누와르를 가장한 멜로'로 느끼게 만든 가장 큰 공신은,

설경구의 눈빛이라고 봅니다. 네.

 

 

맨 마지막에 임시완이 울까 울지 않을까,

울어도 슬프고 울지 않아도 슬프겠다, 하는 마음으로 영화를 마쳤어.

세 번째 볼 때도, 이미 알고있는 결말인데도,

현수는 울까, 울지 않을까 괜스레 생각을 한번 더 하게 되더라고.

 

 

...역시 마무리가 난감합니다.

 

누군가 이 영화를 보겠다고 한다면, 추천할거에요

단, 누와르와 멜로 사이 어딘가 에 있는 영화라는 설명을 덧붙여서.

 

주관적으로 생각하는 영화의 명대사 :

한재호 : (총 쏘고) "어어어...야 괜찮아? 어우어어어.... 존나 아프지?"

조현수 : "어흐으...아 씨발 개씨발아프다"

- 지가 총 쏴놓고 현수보다 지가 더 아픈소리 내는게 완전 웃겨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현수의 저 대사는 임시완의 억양이 귀엽기까지함ㅋㅋㅋㅋㅋㅋㅋㅋ-

 

조현수 : "너도 빵에서 3년 살면 이렇게 돼, 이새끼야"

- 속시원 ㅇㅅㅇ

 

한재호 : "끝까지....모르지 그랬냐"

- 야이씨 ㅠ 울뻔했잖아